이왕이면 좋은 글을 써야지
쓰지 말아야 할 글이 있습니다. 누구 때문에 혹은 무엇 때문에 화가 나거나 속이 상했을 때, 그 대상을 비난하거나 분풀이용으로 쓰는 글. 이런 글은 쓰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스며 있는 부정적 감정을 독자 가슴에 고스란히 옮기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제 블로그를 살펴보면, 화가 치밀었을 때 쓴 글이 몇 있습니다. 다시 읽어 보니 역시나 제 기분이 다시 나빠집니다. 내가 쓴 글을 내가 읽어도 기분이 팍 상하는데, 독자가 읽으면 오죽하겠습니까. 독자는 글을 읽으며 불편한 기분 느낄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속상한 마음을 글로 적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지는데, 그래도 쓰지 말아야 합니까?"
만약, 그런 점 때문에 쓰는 글이라면 세상에 공개할 필요가 없겠지요.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비난하고 화풀이하는 내용을 글로 썼다? 그런 글을 굳이 독자들이 읽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자꾸만 SNS에 올리고 싶은 이유는, 글에 담은 비난의 대상을 세상에 공개하고 싶은 '고자질' 욕구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이유, 책을 읽는 이유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입니다. 살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다 있습니다. 하루만 보더라도 기분이 들쑥날쑥이지요. 불편한 기분을 글로 쓰는 것이 마음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래 몇 가지 내용은 꼭 지키면 좋겠습니다.
첫째, 진실을 밝히는 글이어야 합니다. 자기 고집과 자기 생각만 나열하면서 독자들에게 판단 기회를 빼앗고 무조건 나만 옳다는 식의 글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편협한 생각으로는 자기만 손해를 본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상대는 또 다른 입장인 게 분명하니까요. 감정이 아니라 팩트를 써야 합니다. 팩트를 드러낼 자신이 없으면 그냥 일기로만 쓰고 말아야지요.
둘째, 대상을 향한 분노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세상을 향한 사랑까지 내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글은 사람과 사랑을 담는 그릇이죠. 그게 아니라면 무엇하러 글을 쓰겠습니까. 미운 사람 있어도, '나'라는 존재와 세상을 향한 사랑 만큼은 절대 놓지 않겠다는 인내와 집요함이 글 속에 서려 있어야 합니다.
셋째, 언제 읽어도 내가 썼다는 사실을 후회하지 말아야 하고, 후회하지 않을 만한 글을 써야 합니다. 사흘만 지나면 감정 바뀝니다. 일주일만 지나도 마음이 달라집니다.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여 글을 쓰면 반드시 후회하게 되어 있습니다. 불편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글, 다 쓰고 나도 결코 속 시원해지지 않습니다.
글 쓰는 시간은 생각하는 과정입니다.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 마구 휘갈기는 글 가지고는 어떤 깊이 있는 생각도 할 수가 없겠지요. 가급적이면, 욱할 때는 잠시 멈췄다가 쓰는 게 좋습니다. 다 쓰고 난 다음에 처음으로 돌아가서 찬찬히 읽으며 수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부부싸움 끝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쓴 글은, 나와 독자 모두에게 부끄럽고 졸렬하다는 느낌만 안길 뿐이죠. '부부싸움' 자체에 대해서 나와 독자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화두를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다툼의 발단, 서로의 입장 차이, 누적된 악감정의 실체 등 다양한 관점에서 글을 풀어내야 하겠지요.
글을 쓰는 이유는 멈추기 위함이라고 늘 강조합니다. 당장은 속에 천불이 나겠지만, 잠시 멈추고 생각하고 한 글자씩 쓰다 보면 호흡이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정신이 맑아지면 그 때 다시 글을 살펴야 합니다. 세상에 내놓는 글은 책뿐만이 아닙니다. 요즘에는 각종 SNS에 누구나 쉽게 글을 쓸 수가 있지요. 짧은 몇 줄이 독자와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누가 읽어도 '이 사람 지금 화가 단단히 났구나' 훤히 보이는 글은 얄팍하기 짝이 없는 저속한 글이 되고 말 겁니다.
자신의 분함과 분노를 타인으로부터 공감 받고 싶다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독자 바쁩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책 읽으면서 작가의 불평과 푸념과 비난에 공감까지 해야 합니까? 물론, 읽다 보면 공감해주는 독자도 나올 수 있겠지요. 하지만, 글 쓰는 목적 자체가 '남을 까면서 나를 이해하라'라는 거라면 누구의 마음에도 닿을 수 없을 겁니다.
"책에다 쓰는 것도 아니고 개인 SNS에 쓰는 건데, 그런 것까지 일일이 생각해야 합니까?"
네, 그런 것까지 일일이 생각하면 더 좋습니다. 글 쓰는 행위는 습관입니다. 작가가 의도한 대로 쓸 수 있다면 이미 실력이 상당하다는 뜻이겠지요. 초보 작가는 집중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비난하고 험담하는 글 습관 되어버리면 평생 그런 글만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문체라는 게 있지요. 평어체와 경어체만 문체가 아닙니다. 작가의 성향, 경험, 철학, 가치관 등이 모두 묻어나는 것이 문체입니다. 한 번 습관 잡히면 고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처음부터 사람 위하는 글, 사랑을 기반으로 한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글 한 편 쓰는 데 뭐 이리 생각할 게 많습니까?"
네,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1분짜리 숏츠영상 만들면서도 구독자 모으려고 안간힘 쓰는 세상입니다. 책 한 권 읽으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투자해야 합니다. 독자의 시선을, 그것도 많은 시간 사로잡으려면 당연히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노력도 많이 해야 하겠지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수는 없다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된 겁니다. 문자 메시지나 카톡 보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지요.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 사례, 경험, 생각, 주장, 논거 등을 짜임새 있게 구성해야 제법 괜찮은 글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주제가 가장 중요하겠지요. '누군가를 비난한다!'는 것이 주제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무도 읽고 싶지 않을 겁니다.
작가는 이틀만 지나도 그런 글을 자신이 썼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릴 텐데, 세상에 나온 그 글은 수많은 독자들 가슴에 찝찝함을 남기면서 돌아다닐 테지요. 순간적인 작가 기분과 감정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부정적 감정을 전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자신의 불편한 경험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참한 글 쓸 수가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잊고 살았던 뭔가를 깨우치도록, 무엇이 옳은가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도록, 무조건 옳다고 여겼던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 마련할 수 있도록......화풀이 아니고도 충분히 좋은 글 쓸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