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시간
2016년. 첫 책을 출간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이미 그 전에 많은 글을 썼고, 또 내 이름으로 첫 책도 냈으니 이제는 제법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한테 작가는 명예나 성공이라기보다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이전까지 삶을 '패배자'로 규정한다면, 출간 이후의 삶은 '재기'라고 정의할 수 있겠지요. 그렇게 저는 두 번째 삶으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책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글을 쓰고 있었는데요. 그때 제가 쓴 글은 '사람'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멀쩡하게 잘 살 때는 친구라 믿었던 사람들이 실패하고 난 후에는 조금의 미련도 없이 떠나버렸다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글도 많이 썼고 책도 출간했으니 이제는 과거를 끊어냈다 생각했었거든요. 갑자기 터진 눈물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치유가 덜 된 것인가. 글쓰기는 치유에 별 효과가 없는 것인가. 나는 아직 과거를 정리하지 못한 것인가.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화를 잘내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B는 사사건건 불평 불만이었죠. 식당 가서 밥 먹을 때도 반찬 투정을 하고, 날씨 덥다며 화를 내고, 옷을 사러 가도 짜증을 부렸습니다. B는 우리 친구들도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성격이 괴팍한 녀석이었죠. 화 좀 줄이라고 몇 번이나 권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습니다.
2021년 어느 여름날. 운전대를 잡고 창원으로 향했습니다. 특강이 있던 날이었죠.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창원 시내로 접어드는데, 차 한 대가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끼어들었습니다. 속도도 제법 내던 중이라 깜짝 놀랐지요. 그러고는 도망가듯이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특강 장소에 도착해 별 문제없이 강의했습니다.
그 날 밤 늦게 집에 돌아와서 낮에 있었던 일을 글로 적었습니다. 그런데, 글 쓰는 동안 다시 그 끼어든 차와 상황이 떠올라 막 화가 나는 겁니다. 별 일 아니라 여기고 아무 일 없이 잘 지나갔다 싶었는데, 글을 쓰면서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욱하는 심정이 확 튀어나온 것이죠. 친구 B한테 화 좀 내지 말라고 했던 제가 얼굴이 시뻘게져가지고 혼자 씩씩거리며 글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냥은 모릅니다. 글을 써 봐야 압니다. 그럴 듯한 글 말고요. 진짜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적어 봐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알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나'를 발견합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나'와 '내 생각'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글쓰기를 '나와의 조우'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나'를 발견하는 일은 또 다른 '나'와 만나는 일이죠. 새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실수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한다는 옛말 틀린 게 하나 없습니다.
SNS 세상이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압니다. 시시콜콜 별 걸 다 알 수 있지요. 연예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에 대해서도 사소한 모든 일상까지 낱낱이 알게 됩니다. 반면, 자신에 대해서는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바라는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지,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기껏해야 MBTI 결과만 가지고 자기는 이런 사람이다 경쟁하듯 얘기하는 게 전부죠. 삶에 대해 깊이 있는 '나'를 탐구하는 일 거의 없습니다.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어야 세상 대할 때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실체를 알아야 눈치 보는 일 줄어듭니다. 고개 들고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죠. 그렇게 하려면, 먼저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깊이 파고들게 됩니다. 그냥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과 문장을 쓰면서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자신이 쓰는 문장이 지극히 단순하고 표현의 한계를 느낀다면, 더 공부하면서 써야 합니다. 단어가 확장되어야 의식도 확장되고, 의식이 커져야 자신을 직시하는 습관도 만들 수 있습니다.
글쓰기가 전부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던 삶을 다시 일으키는 과정에서 제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이 글쓰기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제 인생에 있어서 만큼은 글쓰기가 전부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는 거지요.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 적어 보길 권합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쓰지도 말고, 그냥 한 번 솔직하게 써 보는 겁니다. '나'를 정의할 수 있을 때, 세상 보는 눈이 확 트일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