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가는 문장으로

진실을 쓴다는 것

by 글장이


후니가 다섯 살이었을 때. 유치원에서 '십자 블럭'이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즐겨 놀았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니는, 아빠인 나한테 '십자 블럭'을 사달라고 졸랐다. 문제는, 아직 아들이 말하는 것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에 '십자 블럭'이라는 이름 자체를 내게 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뭘 사달라고 간절하게 조르기는 하는데, 대체 무얼 사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빈 종이를 꺼내 거기다 그려 보라고 했다. 하나하나 천천히 설명해 보라고 했다. 결국은 후니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가서 직접 확인까지 해야 했다.


부모는 아이의 눈빛만 보고도 모든 걸 알아챌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어째 부족한 아빠였나 보다. 말은 분명해야 한다. 정확해야 한다. 쉽고 명확해야 한다. 아직 어린 아들을 보면서, 분명한 말이 가지는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아무 소용 없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도 쉽고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소통은 불가하다. 마음 속에 금송아지 백 마리 가지고 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압도적인 성과는 정확한 표현에서 비롯된다. 현재의 내 모습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하고, 바라는 꿈과 목표를 선명하게 그릴 수 있어야 하며, 그 사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말, 글, 음악, 노래, 그림, 건축, 손 동작, 얼굴 표정, 제스처 등 표현 방법은 다양하다. 이 중에서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두 가지만 꼽는다면 단연코 말과 글이라 하겠다. 조리 있게 말하고 논리적으로 쓰는 글이야말로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를 움직이는 최고의 도구인 것이다.


딱 하루만 돌아보아도,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말이나 글을 통해 선택하고 판단하고 결단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하는 말이나 내가 쓰는 글에 의해서 누군가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면, 한 마디 말 신중하게 되고 한 줄 글에 정성 담게 된다.


작가는 무엇으로 표현하는 사람인가? 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책이라 하는 이도 있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는 단연코 '문장'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한 편의 글이 아니라 한 줄의 문장이다.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한 줄의 문장이다. 그 한 줄의 문장이 모여 글도 되고 책도 된다. 작가는 문장에 목숨 걸어야 한다.


한 줄 귀한 문장을 쓰기 위해 수십 장 글 쓰는 것이고, 한 줄 강렬한 메시지 전하기 위해 수백 장 책 쓰는 것. 이것이 바로 작가의 생명이자 소명이다.


글 잘 쓰고 싶지만 어렵고 힘들다며 하소연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들의 글을 살펴볼 때마다 느끼는 공통점이 있다. '전체'에만 관심 있고 '한 줄 문장'은 소홀이 다룬다는 것. 그래서 빨리 쓰고 끝내려 한다. 가급적 '오래 쓰고 싶어하는' 작가가 아니라, '후다닥 끝내고 다른 일 하려는' 작가인 것이다. 글 쓰고 싶다면서 빨리 끝내려 하는 현상,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문장 속에는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진실이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말 한 줄로 써 보라고 하면, 대부분 공자님 말씀을 쓴다. 행복하게 살아요, 자신을 사랑해요, 지금에 충실해요, 가족을 소중히, 사랑이 전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용기와 희망을 품고, 신념과 열정을 가지며, 손만 뻗으면 행복 잡고 옘병하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자신은 이렇게 살고 있는가? 아니, 적어도 이렇게 살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는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 그 한 마디를 위해 온 삶을 바쳐 투쟁하고 있는가?


내가 다소 지나칠 정도로 표현하는 이유는, 그 만큼 '생각없이' 메시지를 정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문장은 곧 진실이어야 한다. 진실이란,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태도여야 하고, 특히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경험! 그렇다! 경험이야말로 군더더기 없는 진실이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대화와 소통이 필요합니다 라고 쓰는 문장은 '죽은' 문장이다. 생명력이 없다. 공자님 말씀이다. 뜬 구름 잡는 소리다. 데일 카네기 정도 되는 사람이 쓴다면? 글쎄다. 아마 밑줄 긋는 사람 많을 테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


출근해서 옆 자리 김대리와 대화를 나눈 이야기를 쓴다. 박과장과 나 사이에 생긴 오해, 그리고 그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을 쓴다. 아내한테 던진 한 마디 실수, 오늘 아침 남편한테 툴툴거렸던 에피소드, 대화를 잘 해서 관계가 좋아졌던 경험, 소통에 문제가 있어 일을 그르친 사례......오직 진실만을 통해 마지막 문장을 쓴다.


- 김대리와 나눈 대화 덕분에 하루를 유쾌하게 보낼 수 있었다.

- 박과장과 나,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소통이었다.

-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아내의 표정을 바꾸었다.

- 남편의 어깨, 한 마디면 충분해요!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뽑아낸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위 문장들. 진실이다. 부끄럽지 않다. 당당하다. 그래서 계속 쓰고 싶다.

심적인 고통으로 말미암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럴 듯하게 보이는 글만 쓰려고 하면 가식과 위선과 껍데기만 가득한 문장을 쓰게 된다. 마음이 아파 잠이 안 온다고 쓰면 될 것을. 포장하고 과장하니, 어렵고 애매하다.

스크린샷 2022-03-06 오전 9.26.07.png

부족하고 모자란다. 실수하고 실패한다. 사람이니까. 불완전한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솔직할 수 있을 때, 독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하고 눈물을 흘린다. '나 잘났소!' 하는 글, 매력없다. '힘들지만 한 걸음 나아가려 합니다!' 같은 글, 박수 쳐주고 싶다.


작가는 글 쓰는 사람이다. 머릿속에 엄청난 아이디어 갖고 있고, 끝내주는 글감 떠오르고, 베스트셀러 콘셉트 기획한다 하더라도, 쓰지 않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 있겠는가.


다 필요없다. 작가는 문장으로 표현한다. 할 말 있으면 글을 써야지.


지금 행복하십시오!

책쓰기 수업 명함 신규.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