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다
빨래비누 냄새를 맡으면 그 곳에서의 생활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세월이 이 만큼 흘렀는데도, 아직 저는 그때의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그 아픔과 상처 덕분에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 곳에는 절망과 좌절에 빠진 채 후회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죄를 지었으니 죗값을 치르는 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 갖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딸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가 뒤에서 밀고 있습니다. 할머니 얼굴에는 표정이 없습니다. 모든 걸 포기했다는 듯, 이제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는 듯, 그저 시간만 기다린다는 듯. 그 할머니 표정에서 돌아가신 장모님을 봅니다. 늘 밝고 환했던 장모님 얼굴은 암에 걸린 후 빠른 속도로 어두워졌지요. 비교적 적은 나이에 세상 떠나셨습니다. 사람을 보고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 존재는 사람뿐입니다. 아픔을 보고 아픔을 떠올릴 수 있는 존재도 사람뿐이지요.
"땀 좀 닦으세요."
비 쫄딱 맞고 땀까지 흠뻑 흘리며 창구에 앉아 대출 서류를 쓴 적 있습니다. 제 3 금융기관이었죠. 창구에 앉아 숨을 헐떡이며 서류를 적고 있으니, 앞에 앉은 직원이 휴지를 주며 말했습니다. 저축은행 문 닫을 시간은 다 되어가고, 당장 돈은 필요하고, 어떻게든 입금 받으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막판에 들른 곳입니다.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 저는 비와 땀이 줄줄 흐르는 얼굴로 대출 서류를 작성했습니다.
[자이언트 북 컨설팅] 운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글을 읽었는데요. 겉모습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수많은 사연들이 글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읽다 보면, 이 사람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을까 생각 들 때가 많습니다. 모진 고통의 세월이 눈에 콕콕 박히는 것 같습니다.
글에 아픔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한 편을 읽고 나면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두 편 읽고 나면 배울 점 있었고요. 세 편 읽고 나면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열 편 읽고 나면, 저도 따라 눈물 흘리고 깨닫고 주먹 쥐게 되고 다시 살아내게 됩니다.
누군가의 고통은 그 자체로 메시지입니다. 아무리 지독한 아픔이라도, 지금 쓰고 있다면 견뎌낸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해낸 것이고 살아낸 것이고 이겨낸 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통이 담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실패 겪고 고생하며 지금까지 살아 보니까 깨닫는 바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글쓰기'에 관한 신념과 철학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앎이지요. 저는 매일 글을 썼고, 매일 글을 쓰고 있으며, 매일 글을 쓸 겁니다. 지난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 저는 글을 쓰며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품고 있을 땐 숨 쉬기가 힘들었는데요. 종이에 쓰고 나면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쓴 첫 번째 책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읽고 힘과 용기 얻었다는 독자 연락 많이 받았습니다. 고난의 시간을 글 쓰면서 보냈다는 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위로 받은 이들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고통을 썼고, 제가 쓴 고통은 타인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고통 쓰기를 주저합니다. 두려워합니다. 창피하게 여기기도 하고, 남들이 욕할까 봐 불안해 하기도 합니다. 손가락질 당할까 봐 무섭다 하지요. 그 심정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읽으면, 손가락질을 하는 게 아니라 위로를 합니다. 이것이 본성입니다. 자기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당장 책으로 낸다 생각지 말고요. 그냥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아팠던 이야기를 글로 써 보면 좋겠습니다. 고통을 재생하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조금만 쓰다 보면 그 시절을 잘 견뎌낸 자신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로울 겁니다.
'과거의 나'는 늘 어리석고 못났지요. 미래의 내가 보면 지금의 나도 여전히 부족하고 아쉬울 겁니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힘 내라고 전해주고요. 미래의 내 앞에서는 겸손한 태도 가지면 됩니다. 수고 많이 했는데, 고생 많이 했는데, 참고 견디느라 애 많이 썼는데, 아무한테도 "수고했다" 한 마디 못 들었지 않습니까. 이제 내가, 그 시절의 나한테, "수고 많았다, 애 많이 썼다" 손 한 번 잡아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10년 전의 나한테 쪽지 한 장 보낸다는 마음으로 쓰는 거지요. 10년 전의 이은대는 절망과 희망 사이 어디쯤 서 있을 겁니다. 여전히 아프고 힘들면서도,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겠지요.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잘하고 있다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계속 하라고! 내가 살아 보니까, 너 진짜 멋진 놈이더라고! 당장의 그 고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니까 힘 내라고!
그 시절 이은대에게, 덧붙여 이 한 마디도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아들 "두 마리 치킨"은 꼭 한 번 사주라고요. 10년 동안 가슴에 못 박혀 있을 수 있으니, 어디 가서 돈을 빌려서라도 "두 마리 치킨"은 꼭 한 번 사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고통을 글로 쓰면 메시지가 됩니다. 나 자신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될 때도 있고요. 다른 사람한테 전하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고통이 고통으로만 남지 않고 메시지로 승화될 때, 내가 내 삶에다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셈이 됩니다. 아픈 삶을 그럴 듯한 삶으로 바꾸는 것이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