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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되고 싶다면

글 쓰는 사람

by 글장이


경제학과 졸업했다. 파산했다. 친구 중에는 신학과 나와서 대기업 총무팀 근무하는 녀석도 있고, 경영학 전공하고 카페 운영하는 놈도 있고, 법대 나와서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아빠육아" 전문가도 있다. 대학 전공 살려 잘 먹고 잘 사는 친구도 많지만, 공부한 내용과 무관한 삶을 나름 잘 살아가는 사람도 셀 수 없다.


아들은 스무 살이다. 대학교 1학년. 독일어 전공이다. 남은 인생 얼마나 될까? 못해도 80년. 스무 살 청년이 80년 인생을 결정지을 수 있을까? 앞으로 수많은 일들이 펼쳐질 테고, 매 순간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할 텐데. 언제 어떤 길로 들어설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전공을 아무렇게나 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한계를 두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이 쪽도 공부하고 저 쪽도 관심 갖는다.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본다. 온 세상 다 헤집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젊음 아닌가! 공무원 시험 떨어지면 농사나 짓겠다는 허튼 소리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첫 책을 냈을 때, '작가의 자격' 운운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았다.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 막노동꾼이었던 내가 책을 출간하고 작가가 되었다 하니, "개나 소나 다 작가 된다"며 비웃고 손가락질 했었다. 마음 아팠지만 대꾸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내가 개나 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눈에 이상하리만큼 별종이 작가가 된 것은 맞는 말이었으니까.


3년쯤 전인가. SNS에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누군가 주동이 되어서 "작가 자격 시험"을 만들고, 그 시험에 합격한 사람한테 자격증을 부여한다는 내용. 돈벌이 목적으로 그런 기획을 했다는 점에 대해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세상에다 도로 벽을 세우겠다는 의도였으니 당연히 망할 수밖에. 이후로 별 얘기가 없는 것으로 봐서 아마 진행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유튜브 세상이다. 뭘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임이 증명되고 있다. 짜장면 많이 먹는 걸로도 돈 벌고, 신나게 욕만 해도 돈 벌고, 남녀간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이리저리 수다만 떨어도 돈 버는 세상. 그러니까, 먹고 살 길은 많고 많다는 얘기다. 문제는 가치의 실현. 돈 버는 것 외에 자아실현과 보람과 생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하는 행위가 곁들여져야 한다.


매일 아이들 가르치는 사람을 교사라고 한다. 매일 진료 보는 사람을 의사라 하고, 매일 약 짓는 사람을 약사라 부른다. 매일 운동하는 사람을 선수라 부르고, 매일 노인을 돌보는 사람을 요양보호사라고 정의한다.


작가는 누구인가? 매일 글 쓰는 사람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오늘 글을 쓰면 된다. 이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많은 예비 작가들이 글은 쓰지 않고 '글 쓸 준비만' 한다.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고민을 하고 사색을 한다. 얼마나 좋은 글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쓰지 않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왜 쓰지 않느냐고 물으니 "잘 못 쓰기 때문에 안 쓴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안 쓰니까 더 못 쓸 테고, 더 못 쓰니 점점 더 안 쓸 게 분명하다. 쓰지 않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 그러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놓지 않는다. 명백히 잘못된 접근이다.


일단 써야 한다고 강조했더니, 어딘가에서 "무조건 쓰기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고 받아친다. 꼬투리다. 말장난이다. 배우고 공부하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펜을 놓았다. 못 쓰는 글이라도 매일 쓰면서 연습하라는 뜻인데, 이제 와서 무조건 쓰기만 하면 안 된다니. 그럼 또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핑계와 변명거리만 주는 셈이다.


순서는 정해져 있다. 일단 쓴다. 자신이 쓴 글을 읽어 본다. 어색하고 이상하다. 그런 부분들 골라 최대한 고쳐 본다. 다시 읽어 본다. 이와 같은 행위를 지속적으로 매일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진다. 독서와 공부를 병행하면 훨씬 나아질 테고.


쓰지 않던 사람이 내 강의를 듣고 난 후에 자기 블로그에다 장문의 글을 쓰는 걸 몇 번이나 봤다. 문장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런 글을 꾸준히 많이 쓰면 누구 못지않은 글쓰기 실력을 갖출 것이 분명하다. 아쉬운 것은,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사실.


은유 작가 좋아한다. 그녀의 책 <다가오는 말들>에 보면, "나는 작가라는 말이 여전히 어렵다"는 문장이 나온다. 딱 이 한 줄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엇이 어려운가. 그녀보다 한참이나 글을 못 쓰는 나 같은 사람도 작가라는 말이 쉽다. 작가는 글 쓰는 사람을 뜻한다. 여기에 자꾸 어려운 말 갖다 붙이고 복잡한 설명 넣으려 하니까 어렵게 느껴질 뿐.


깊이 생각하고 고뇌하는 사람 많다. 나름 의미가 있겠지. 하지만, 그 깊은 사색과 번뇌가 망설임이나 주저함으로 연결된다면 당장 생각 따위 때려치우라고 권하고 싶다. 무엇이 두려운가! 나의 경험과 생각과 지식을 있는 그대로 종이에 적어 다른 사람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 주겠다는 행위. 이런 글쓰기가 복잡해야 될 무슨 이유가 있다는 말인가.


남을 비방하는 글? 안 된다. 세상 비판만 하는 글? 쓰지 마라. 다른 사람 해꼬지 할 목적으로 쓰는 글? 차라리 작가 되지 마라. 이런 종류의 글이 아니라면, 쓰기를 망설일 아무런 이유가 없다. 육아 힘들다고 쓰고, 직장 스트레스 쓰고, 부부 갈등 쓰고, 외로움 쓰고, 막막함 쓰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쓰고,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다고 쓰고...... 글 덕분에, 책 덕분에 다시 살아갈 힘 얻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좋은 일이다. 좋은 일 할 때는 주저하는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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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만 더 보태자면, 작가가 되고 싶다고만 생각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도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이왕이면 좋은 작가가 되어야지. 그렇다면 좋은 작가란 어떤 사람을 일컫는가. 각자 판단해야 할 몫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자격 따위 생각지 말고 그냥 글을 쓰면 된다. 공부도 좋고 준비도 좋지만, 쓰면서 해야 한다. 글 쓰면서 전부 다 해야 한다. 쓰면서 살아내야 한다. 살면서 써야 한다. 이것이 작가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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