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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변하지 않는 건 글쓰기뿐이었다

더럽고 치사한 세상

by 글장이


맨 처음 사람 만나면 셋 중 하나 마음이 생겨납니다. 너무 좋은 사람, 그저 그런 사람, 그리고 가까이 하기조차 싫은 사람. 이러한 첫 느낌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너무 좋은 사람과 함께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단점과 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기대했던 것은 100인데, 자꾸만 실망스럽고 마음 다치는 경우가 생기니까 마음이 서서히 불편해집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첫 기대가 워낙 컸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실망도 큰 것이지요.


그저 그런 사람에 대한 마음도 바뀝니다. 만나 보니 좋은 점도 많더라, 혹은 만나 보니 더 엉망이더라. 한 사람의 안에는 수십 수백 가지 페르소나가 존재합니다. 내 취향에 맞는 부분 발견하면 '좋다'고 표현하고, 나의 성향과 다른 부분에 대하여는 '나쁘다'고 말하지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생각했던 사람도 변합니다. 그 사람이 변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달라지는 겁니다. 나름 좋은 점도 있었네. 썩 괜찮은 사람이었네. 그러다가 또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나면, 역시 엉망이었어 결론을 짓곤 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 자기도 모르게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평가, 그리고 기대입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철학이 다릅니다. 누구나 기준이란 걸 두고 살아가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모든 사람의 기준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이라면, 각자의 생각과 기준도 80억 개라고 봐야 합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또 책에도 이와 같은 내용 많이 적혀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살아야겠다 다짐하면서도, 막상 현실에서는 내가 정한 기준에 따라 여전히 '판단'하고 '기대'하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내가 남을 평가하면 남도 나를 평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뭔가 기대하면 상대도 내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평가 기준과 기대치에만 연연하면서 살아가면, 상처와 아픔과 배신감을 영원히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나는 옳고 네가 틀렸다'는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불행한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셈입니다.


인생 통틀어 수많은 사람 만났습니다. 사람이 가장 힘들었고, 사람이 가장 나빴고, 사람이 최악이었으며, 사람 때문에 모든 사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행복한 순간에도 사람이 있었고, 불행한 순간에도 사람과 함께 했습니다. 인간관계, 공부도 많이 하고 책도 엄청나게 읽었습니다만, 역시나 제게는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유튜브나 숏츠 영상, 그리고 각종 SNS에 '인간관계 이렇게 하라'는 식의 명언이 자주 올라옵니다. 성공하려면 이런 사람 가까이 해야 한다, 성공하려면 저런 사람 멀리 해야 한다, 사람을 대할 때는 진심을 다하고, 헤어질 땐 미련을 버려야 하며, 사람에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읽는 순간에는 무릎을 탁 치면서 옳다거니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명언 대로 적용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세상이 만든 교과서는 늘 그럴 듯하지만, 모든 사람 마음 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선함과 악함이 공존하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기가 힘든 것이죠. 때로 좋은 사람이다 싶다가도, 어떤 때는 형편없는 존재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 마음조차 하루 수십 번 바뀌는데, 다른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요.


첫째,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좋은 사람도 그저 좋구나 할 수 있어야 하고, 싫은 사람도 그냥 싫구나 하고 말아야 합니다. 좋은 사람을 더 좋게 만들려는 노력, 싫은 사람을 뜯어고치려는 시도. 이러한 집착이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이지요.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그냥 저 사람의 모습이구나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사람은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자기식의 기준을 적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름에 옷을 껴입는 사람도 있고, 겨울에 반바지 차림으로 지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미쳤나?'라고 생각할 게 아니란 거지요. 각자의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끼치거나 사회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그런 일이 아닌 이상,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습니다. 나와 저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기 틀에 끼워맞추려는 습성을 없애야 합니다.


셋째,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함부로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야 합니다. 소리지르고 욕하고 상처가 되는 말을 막 하고...... 이런 짓은 늘 '가까운' 사람한테 저지르게 되는데요. 늘 곁에 있다는 이유로 쉽게 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사랑하면 더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더 주의해야 합니다. 사람이 만만해지기 시작하면 말과 행동도 함부로 하게 됩니다.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빠져들지 않는 것이 먼저겠지요.


넷째, 관계는 언제나 순수해야 합니다. 내가 이 만큼 줬으니 너도 이 만큼 해야 한다는 생각. 관계를 '거래'로 보는 습성이지요. 줄 때는 그냥 주어야 합니다. 받을 마음이 있다면 정식으로 요청해야 하고, 상대가 그 요청에 응하지 않을 땐 즉시 마음 내려놓는 것이 마땅합니다. 내가 주었으니 너도 달라는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관계를 결코 오래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냥 장사를 하는 편이 낫겠지요.


다섯째, 사람은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의 그 모습이 전부가 아닙니다. 내일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 오늘 하루에만 열 가지 모습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한결 같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요? 자기도 시시각각 마음 달라지고 변하면서, 남은 매번 똑같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마음이겠지요. 늘 달라지는 게 사람 마음이니까, 어느 한 가지 마음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관계로부터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덜 받을 수 있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문제는,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실전에서는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자신만의 기준을 내려놓기도 어렵고, 타인을 판단하는 습성도 버리기 힘들고, 자기도 모르게 기대하는 습관도 고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작가와 강연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독자와 수강생을 만나며 일합니다. 결국 저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셈이죠. 제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화를 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했고요. 내가 이 만큼 열심히 해주니까 그들도 어느 정도 반응을 보일 거라 기대하며 살았습니다.


싹 다 잘못되었습니다. 타인을 제 기준에 맞추려는 발상 자체가 틀렸고요. 사람에 대한 판단은 맞아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모두 제가 스스로 만든 결과입니다. 제가 만든 상처이고, 제가 만든 아픔이고, 제가 만든 고통입니다.


나의 기준과 판단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오직 하나의 존재는 '글쓰기'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제 기준보다 높았고, 제 판단보다 훌륭했으며, 제 기대보다 더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글 쓰면서 살아갈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상처도 글을 쓰면서 아물었고, 사람에게서 얻은 아픔과 고통도 글 쓰면서 줄였습니다. 백지는 제가 하는 말을 항상 귀기울여 들어줍니다. 딴지 걸지 않고 비판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줍니다.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무인도에 던져 놔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은 '함께'라는 말 많이 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함께'가 상처가 된 적이 더 많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 받아들인 탓이죠. 이제는 명백히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따뜻하고 아름답고 멋진 곳이 아니라, 고통과 배신과 얼음으로 가득 찬 냉혹하고 무정한 곳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비관주의자가 된 게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이 생긴 것이지요.


세상을 좋은 곳으로 보면 매일 상처 받습니다. 세상을 최악으로 보면서 살면 수시로 감사하게 됩니다. 조금만 좋은 사람 만나도, 이 험한 세상에 어찌 이런 사람이 다 있나 감탄하게 되니까요. '나쁜 곳'에서 살아갑니다. '나쁜 곳'에 좋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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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한 기준, 내가 내리는 판단, 내가 품는 기대. 세 가지 마음이 스스로 다치게 한다는 걸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안고, 오늘도 한 번 버텨 보려 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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