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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삶의 경험을 위대하게 생각하라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들

by 글장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5년 동안 모형 항공기를 만들어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상을 받은 적도 있었고, 예선에서 탈락한 적도 많았습니다. 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글라이더를 만들어 하늘 높이 날리고, 공중에 둥실 떠다니는 '내가 만든 비행기'를 보면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선생님과 부모님은 제 생각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공군참모총장 상을 받았을 때는 "최고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나, 예선에서 탈락했을 때는 "그 시간에 공부나 하지"라며 못마땅하게 여기셨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모형 항공기에 대한 매력을 점차 잃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재미로만 만들고 날렸더라면, 저는 지금까지 글라이더를 조립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드시 상을 받아야만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강박이 저로 하여금 흥미를 잃게 만든 것이죠.


어린 시절 누구에게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시골에서 돼지나 닭을 직접 키워 본 사람도 있을 테고,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다친 경험도 있을 것이고, 남의 밭에 들어가 수박을 훔쳐 먹다가 호되게 야단 맞은 적도 있을 테지요.


성장 과정에서도 숱한 경험을 했을 것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온갖 일 다 겪었을 겁니다. 모형 항공기를 만들고 날리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잠시에 불과하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제 삶에서 처음으로 겪은 도전이었고 모험이었으니까요. 키 작은 남자 아이가 학교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글라이더를 바라보는 모습. 저 자신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 풍경도 아름답습니다.


어린 시절, 성장 과정, 어른이 된 후의 경험들. 이토록 쓸거리가 많은데, 사람들은 왜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글감이 없다는 말을 하는 걸까요? 이유는 한 가지뿐입니다. 지난 세월 자신의 경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글을 쓰려니 탐탁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죠.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귀뚜라미를 소재로 글을 써서 글짓기 대회에 제출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집은 양옥이었고, 작은 마당도 있었는데요. 가을만 되면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렸거든요. 하도 짜증이 나서, 마당에 나가 귀뚜라미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병 속에 넣고 가두었지요. 물을 붓기도 하고, 들고 흔들기도 하면서 마구 괴롭혔습니다.


이틀인가 지나서 보니 병 속 귀뚜라미가 미동도 않은 채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심하게 괴롭힌 탓에 죽어버린 거지요. 그 순간 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고 또 심란했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마당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가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단 사실입니다.


저 글을 쓰는 동안 제 마음 울림은 컸습니다. 엄청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적어도 제가 사는 우주는 크게 한 번 흔들렸던 겁니다. 그래서 쓰지 않을 수 없었고요.


모형 항공기를 만들어 날리던 시절. 그리고 귀뚜라미의 죽음. 인생 절반을 살아오는 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이야기입니다. 글 쓰는 삶을 만났고, 제가 살아온 인생을 더듬어 살피다가 다시 찾게 된 소중한 경험입니다.


별 것 아니라고 여겼던 순간들,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기억들, 아무것도 아니라 치부했던 과거들. 그 모든 순간 덕분에 제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좋아요'를 많이 눌러줄 거라고 기대하는 글만 쓰려고 하니까 도무지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습니까. 다른 사람은 겪지 못한, 오직 나만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습니까. 모든 순간을 적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 버리고 생을 마감할 겁니까.


오죽하면 감옥에 다녀온 이야기조차 글감으로 쓰겠습니까. 파산하고 알코올 중독에 걸리고 막노동했던 이야기까지 전부 책에다 썼습니다. '나 잘났다'는 마음으로 쓴 게 아닙니다. 내 삶이니까, 내 인생이니까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심정으로 적은 겁니다.


내가 내 삶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누가 내 인생을 아껴주겠습니까. 스스로 별 것 아니라 여기는 것을 대신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은 절대로 없습니다.


살아온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행위를 부끄럽고 창피하게 여기는 것은 스스로 자기 삶을 못마땅하게 평가하는 태도지요. 고생 많이 하고 상처 많이 입은 사람일수록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지나간 시간이잖아요. 그 시간들 속에 분명 내가 있었지 않습니까. 지금 여기 있다는 말은, 모두 이겨내고 견뎌내고 버텨냈다는 증명인데요. 이것이 왜 부끄러운 일입니까. 오히려 당당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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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벌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허구헌날 남들한테 밟히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가치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과거의 경험을 위대하게 여겨야 마땅합니다. 감옥에 다녀온 전과자도 이런 마음으로 사는데, 하물며 멀쩡하게 살아온 여러분이 자기 삶에 당당하지 못할 이유 뭐가 있겠습니까.


한 번 적어 보세요. 모든 삶은 글이 됩니다. 한두 가지 에피소드에 매달려 뽕을 뽑겠다 하지 말고, 기억을 더듬어 삶의 구석구석 처박혀 있었던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죄다 끄집어내길 바랍니다. 살아왔고, 그 이야기 글로 쓴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거겠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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