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마음
과거에 약 3년간 막노동을 한 적 있습니다. 초라하게 입고 다녔지요. 일을 마치고 나면 시멘트, 오물, 먼지 등이 잔뜩 묻은 채로 한참을 걸어서 집에 와야 했습니다.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가지만, 거친 작업을 하는 날에는 여벌까지 땀에 젖고 맙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한창이었을 때, 거리에는 후보자와 지지자들이 몰려다니며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는데요. 마침 꼬질한 모습으로 지나던 저한테는 아무도 악수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못 봤을 수도 있고 일부러 인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피해망상 탓인지 그 날 저는 기분이 아주 나빴습니다.
내 옷차림을 보고 무시했다는 내용을 인터넷에 올릴까 생각도 해 보고, 해당 후보자 선거 사무실 찾아 가서 진상을 부릴까 씩씩거리기도 했습니다. 멀쩡하게 넥타이 매고 대기업 다니다가 사업 실패해서 막노동 하며 살고 있는 저 자신 신세에 스스로 자책하고 한탄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게 못마땅했던 거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그때 일을 인터넷에 올리지도 않았고 선거 사무실을 찾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일기 등 아무 글이나 끼적거리던 노트에 그냥 적기만 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요.
치유의 글쓰기? 글쎄요. 지난 10년 동안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도 '치유'라는 말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병이 낫거나 회복되는 걸 치유라 하지요. 제 상처가 워낙 큰 탓인지, 아니면 그런 식의 글 쓰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 감정적으로 불안하거나 화가 치솟을 때 글쓰기가 진정 효과를 준다는 사실입니다.
다양한 형태로 글을 써 보았는데요. 무조건 막 쓴다고 해서 감정이 진정되는 건 아니고요. 몇 가지 방식이 있더라고요. 오늘은 부정적이거나 격한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는 글쓰기 방법을 정리해 봅니다.
첫째, 판사가 되지 말고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감정이 격해 있을 때 글을 쓰면 자칫 흑백논리를 펼칠 우려가 있습니다. 나는 잘못이 없고 상대만 죄인인 것처럼 쓴다는 뜻입니다. 다들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겁니다. 내 문제일 때는 눈에 뵈는 게 없는데, 다른 사람이 비슷한 일 겪었다 할 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그런 경우 말입니다.
엄밀하게 따져서 내가 옳고 상대가 그릇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대부분은 둘 다 비슷하거나 똑같은 입장일 때가 많습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주장하지만, 상대는 또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지요.
판사처럼 글을 쓰면 감정이 더 격해지기만 합니다. 자신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럴 때는, 그저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기만 하면 됩니다. 내 복장은 이러했고, 길을 걸었고, 선거 유세자들과 마주쳤고, 악수를 청하지 않았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오직 팩트만을 기준으로 글을 쓰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는 힘이 생겨서 감정보다는 이성의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둘째, 관찰자가 되어 세심하게 보고 듣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팩트만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팩트에 집중해야 합니다. 상대의 표정, 말, 행동, 옷차림, 습관 등 일거수일투족을 잘 관찰하여 글로 적는 것이죠.
"후보자 곁에 서 있는 남자는 마흔 중반쯤 되어 보였다. 검은 색 뿔테 안경을 썼는데, 나를 보자 한 손으로 안경을 치켜올리며 탐색하는 듯 위아래로 훑어 보았다. 마치 점수를 매기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후보자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고, 그들은 모두 내 옆을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들이 나를 무시해서 속상했다."라고 적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겁니다. 이렇게 모든 순간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감정보다는 쓰는 행위 자체에 몰입하게 되지요. 화 내는 작가가 아니라 관찰하는 작가가 되자는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늘 평온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셋째, 합리와 정의보다는 세상을 지켜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재고 따지고 분별하는 습성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미 오랜 세월 살아 보아서 잘 알겠지만, 세상이 어디 내 마음과 같던가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을 수도 없는 사건과 사고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합니다. 이런 세상을 내가 가진 기준에 따라 해석하려고 들면 매 순간 피곤하고 지칠 뿐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다, 세상은 온갖 일과 사람으로 가득 찬 곳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그저 바라보는 습관을 가지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꾸는 것이 마땅하고, 또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요. 허나, 자기 마음이 불편하고 감정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세상을 바로 보고,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어야 이성적인 판단도 제대로 할 수가 있는 거겠지요.
초보 작가가 쓴 글을 읽어 보면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보이는데요. 먼저, 자신은 옳고 상대는 잘못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생각 대로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세 번째는, 자신이 피해자라는 내용입니다. 네 번째는, 자기 인생이 참 고달팠다는 하소연입니다. 다섯 번째는, 뭔가 못마땅하다는 푸념과 불평입니다.
이런 글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독자가 가져갈 것이 없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독자를 위함이지요.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만, 그것이 독자들에게 어떤 도움이나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만 글로써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나 힘들다, 내 편 들어줘!"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쓰면 독자들로부터 외면 받습니다. 다들 살기 힘든데 어떤 독자가 작가 위로해주려고 책을 읽겠습니까. 생각할거리를 던져주고 함께 고민하고 서로 힘이 되어주고 깨닫고 배우고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뭔가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쓰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작가 자신의 감정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것이죠.
세상과 사람을 관찰하고 그대로 적다 보면 어느 새 불 같던 감정이 차분하게 내려앉습니다. 이른바 '에세이 효과'입니다. 제가 직접 붙인 이름인데요. 저는 지난 10년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에세이 효과'를 톡톡히 누렸습니다.
한 번 화가 나면 한 달 넘게 펄펄 끓던 제가, 이제는 이틀 정도면 식을 수 있게 되었고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복수심에 불타던 제가, 저 자신의 삶을 반듯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기든 에세이든 매일 글을 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격한 감정 추스리지 못해 후회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부글부글 끓는 감정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소중한 일에 쏟아부을 에너지 낭비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매일 꾸준하게 글을 쓰다 보면, 세상도 보이고 사람도 보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순간적으로 치솟는 격앙된 감정이 나의 삶에 아무런 도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감정은 억누르거나 폭발시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일어나는 대로 인정해주고 받아주고 고개 끄덕여주면 알아서 잠잠해집니다. 글쓰기는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