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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08. 2023

준비와 계획보다 중요한 "이것!"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


8월 9일(수)부터, 그러니까 내일부터 책쓰기 정규과정 2주차 수업을 진행하기로 되어 있다. 지난 7월에 이미 8월 정규과정 4주차 강의 자료를 모두 완성해두었다. 강의 자료는 한 번 만들었다고 해서 그대로 두면 안 된다. 수시로 꺼내 살피고 중얼중얼하면서 수정하고 보완해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한 달 전에 공들여 강의 자료 초안을 완성해두고, 3~4일 전까지 최종본으로 뽑아낸다.


문제는, 강의 자료를 만들고 보완할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없을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두 시간 분량의 강의 자료를 만드는 데 약 스무 시간 걸린다. 실제로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어떤 내용을 어떤 식으로 풀이해야 수강생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극을 주며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구하고 자료 찾는 시간이야말로 고난(?)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강의 자료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단순히 수강생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과정만은 아니다. 작가, 그리고 강사로서의 삶을 선택한 나 자신에 대한 예의이며 소명이기 때문이다. 거창한 말을 하면 비웃거나 허투루 여기는 사람 많은데, 적어도 나는 높은 차원의 단어들을 일상에 적용한 덕분에 바닥에서의 삶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오늘 아침에 두 건의 부고를 접했다. 무더위 탓에 잠시 망설였다. 가야 하나, 아니면 그냥 조의금과 화환만 전할까. 그러다 금새 마음 바꾸었다. 좋은 일이야 내가 직접 못 가도 이해를 바랄 수 있지만, 슬프고 아픈 일을 겪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직접 가 보아야 한다는 나만의 원칙을 따르기로 했다. 도저히 가 볼 수 없는 상황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만 내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영남대의료원장례식장>에 먼저 들렀다가 <합천추모공원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도로에 차가 별로 없어서 나름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오전 10시에 집에서 출발하여 두 군데 모두 잠깐 들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3시쯤 되었다. 가기 전에는 잠깐 망설였지만, 역시 다녀오니 마음이 편안했다.


강의 하루 전까지 자료 붙잡고 고민하는 사람들 있다. 나에게 이런저런 강의 관련 질문을 하는 사람들만 봐도 주로 강의 하루나 이틀 전에 전화 온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개념이 아니라, 발등에 불 떨어지고서야 자료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도 강의 하루 전날 두 건의 부고 소식이 들려오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


준비하고 계획 세우는 사람 많다. 노트에 적고 일정을 짜고 색도 다양하게 칠한다. 철저함과 완벽주의. 나름의 습관일 테니 좋다 나쁘다 말할 것은 아닌 것 같다. 과거의 나도 못지않게 준비와 계획에 목을 걸고 살았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경험을 한 덕분에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었다. 삶에는 항상 '변수'가 존재하고, '돌발사태'가 수시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준비와 계획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단, 50퍼센트만이다. 나머지 절반은 반응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태도가 삶의 절반을 완성한다. 준비한 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계획한 만큼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준비와 계획은 흥이 올랐을 때의 행위다. 열정 뜨겁고 의지가 불타고 유쾌하고 즐겁고 피가 끓을 때, 우리는 준비하고 계획한다. 그 뜨거움이 식는 순간, 준비와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시간 낭비가 되고 만다. 사건, 상황, 환경, 조건, 돌발사태 등에 대한 '반응'에 초점을 맞출 때, 삶은 훨씬 견고해진다.


준비한 만큼 성과가 없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 준비와 계획이 틀어지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기대와 달리 모든 부분이 엉망인 채로 그 실체가 드러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실망, 좌절, 절망, 일그러진 표정, 한숨, 짜증, 분노, 불평, 불만, 욕설...... 위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런 단어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분명히 말하지만 준비나 계획 따위 백날 세워 봐야 인생 좋아지지 않는다.


원칙은 이거다. 좋은 일만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 안 좋은 일은 수시로 일어난다. 왜 하필이면 내게? 그런 투정은 의미 없다. 그냥 생긴다. 별 일이 다 생긴다. 기가 차고 분하고 억울하고 분통 터져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인생이니까. 좋은 일도 생기지만 나쁜 일도 생긴다. 이 사실부터 받아들이는 게 먼저다.


준비하고 계획한 대로 술술 풀리면 그 자체로 좋은 거다. 틀어지고 꼬이고 엉망이 되면, 그럴 수도 있는 거다. 이런 측면에서 인생은 글쓰기와 꼭 닮았다. 술술 잘 써지는 날 있는가 하면, 종일 노트북 붙들고 앉아 있어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 있다. 잘 써지는 날은 그냥 좋은 것이고, 안 써지는 날은 그냥 그럴 수도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그렇다. 세상에는 이런 일이 다 생긴다. 얼마나 '이런 일'이 많이 생기면 TV 프로그램까지 나왔겠는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억울하고 분한 인생이 된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평온하고 행복한 인생 만들 수 있다.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걸 태연하게 받아들여야 좋은 일이 더 많이 몰려온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도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축복이 쏟아지는 법이니까.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빼고, 그저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라는 사람은 신이 봐도 밉상일 거다. 주는 대로 불평 없이 맛있게 먹는 사람이 예쁘지 않은가.


준비와 계획을 세우되, 멀리 보고 미리 챙겨야 한다. 준비와 계획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냥 오늘과 지금을 산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마음도 다 내려놓았으니, 오늘과 지금을 즐기는 것만 남았다. 돌발상황이 생기고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해도, 할 일 다 할 수 있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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