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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10. 2023

'나 잘났소' 아니고, '당신께 드립니다'

작가와 독자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님은 무얼 하셨고 형제자매는 어떠했다."

"내 성격은 이러하며, 그래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상처와 아픔이 많았고, 힘들었고, 많이 슬펐다."


초보 작가들 중에는 위와 같은 내용을 자신의 책에다 쓰는 경우 많습니다. 그것도 1장 전부, 심할 때는 2장 3장까지 저런 내용으로 가득 채우기도 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독자들께 무엇을 주려는 건가요? 독자에게 어떤 도움을 주려고 글을 쓴 겁니까?


신세 한탄이나 자기 자랑을 하려면 책 내지 말고 일기를 써야 합니다. 책값 내고 시간 투자하고 에너지 소모해 가며 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나 잘났소' 하는 내용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책이라는 것이 독자를 위한 메시지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독서를 하지 않은 탓입니다. 책은 읽지 않은 채 책을 쓰려고만 하니까 작가 본인한테만 의미 있는 글을 쓰는 것이지요. 미안한 줄 알아야 합니다.


어릴 적 사고로 인해 물을 두려워하는 여자가 있다고 칩시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물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비 오는 날에는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라는 양반이 이벤트 해준답시고 워터파크에 데려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자친구는 '자신을 위한' 이벤트를 하는 셈입니다. 여자친구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지요. 이런 건 선물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그러니까 다섯 살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제 생일이었는데요. 변신 로보트를 꼭 갖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누나가 케잌을 선물로 주더군요. 저는 케잌 싫어합니다. 누나는 저를 위한 선물을 준 게 아니라 자신이 먹고 싶은 케잌을 선물한 거죠. 어린 나이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어쨌든 선물을 받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하나도 없었던 겁니다.


중학교 때 사회 선생님이 기억납니다. 교실에 들어와 교단에 서면, 그때부터 시선을 책에다 고정시킵니다. 45분 수업하는 동안 고개를 한 번도 들지 않아서 별명이 '묵념 선생'이었죠. 학생들을 위한 수업이 아니라 자신이 편한 대로 진행하는 수업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시간 땜빵'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책은 독자를 위한 선물입니다. 선물은 받는 사람 기호와 취향과 필요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독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독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이것이 과연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좀 더 쉽고 분명하게 쓸 수는 없을까. 책 쓰는 동안에는 온통 독자만 머릿속에 가득해야 합니다.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은 채, 읽을 사람들 알아서 읽으라는 식으로 출간하는 것은 책임감도 없고 출판사에 민폐만 끼치는 행위입니다. "메시지 없는 책도 많던데요?" 대체 어디서 누가 쓴 에세이를 읽었길래 그런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읽은 그 책 좀 알려달라 했더니 제목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읽은 게 맞는지 의심스럽지요.


세상에 메시지 없는 책이 어디 있습니까. 에세이든 소설이든 자기계발서든 인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장르를 불문하고 독자를 위한 그 무엇이 담겨 있는 게 바로 책입니다. 책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써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무엇을 쓸 것인가?" 라는 결정입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만 선명하게 정해지면 누구나 책 한 권 쓸 수가 있습니다.


6년쯤 전에 젊은 남자 작가 지망생이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이라면서 저한테 주제와 내용을 건넨 적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자신에 대한 내용뿐이었습니다. 마치 자기 소개서처럼 느껴졌지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이런 내용을 책에 담으려 하는가 라고 말이죠. 그랬더니 그 남자 대답이 가관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저에 대해 궁금해 할 것 같아서요."


얼마나 책을 읽지 않았는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자기 생각에만 갇혀 허황된 인생을 살아가는 친구죠. 세상 누구도 당신한테 관심 없다, 직설적으로 알려주려다 상처 받을 것 같아 말았습니다. 대신, 책을 좀 다양하게 읽어 보는 게 좋겠다며 좋게 설득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관심 있는 것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오직 자기자신에 대해서만 관심 있지요. 유치원 발표회 가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기 새끼'만 쳐다보느라 정신 없습니다. 발표회 내용이 무엇인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떠한지, 그런 건 애당초 관심 없습니다. 내 아이 어디 있는지, 내 아이 표정 어떤지, 내 아이 잘하는지, 내 아이 역할 무엇인지, 내 아이, 내 아이, 내 아이뿐입니다.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 심리가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작가가 글을 쓸 때도 독자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그래도 쓰고 싶은 글 쓰는 게 맞지 않나요?"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사람 있겠지요. 그러니까 그냥 일기 쓰라니까요. 쓰고 싶은 글 실컷 써서 그냥 서랍 안에 보관하면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합니까? 작가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썼는데 그걸 왜 세상에 내놓으려 하느냐 이 말입니다.


세상에 내놓으려면 독자를 챙겨야 하고요. 그러지 않을 거라면 그냥 일기를 쓰면 됩니다.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써가지고 독자들로부터 인정도 받으려 하는 것은 욕심이고 이기주의입니다. 작가가 쓰고 싶어서 쓴 글을 독자가 대체 왜 읽어야 합니까. 독자는 자신에게 필요하고 관심 있는 내용만 읽고 싶어 하는데요.


그리고 무엇보다, "쓰고 싶은 글"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초보 작가로서 기고만장 오만과 시건방입니다. 책도 많이 읽지도 않고 글도 제대로 써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쓰고 싶은 글이 어디 있습니까. 어디서 이상한 얘기 듣고 괜히 작가 코스프레 하는 겁니다. 지금은 이런 글도 써 보고 저런 글도 써 보고 생각나는 대로 마구 써 보는 단계입니다. 독자가 필요로 하는 내용 중에서 작가 본인이 다룰 수 있을 만한 내용을 찾아 적는 것이죠. 교집합을 찾는 것이 먼저입니다.


자기 안에 함몰된 글은 힘이 없습니다. 독자의 마음에 닿고,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독자로 하여금 행동할 수 있도록 촉구하고, 이도 저도 아닐 땐 독자의 공감이라도 유도하여 작은 위로나 희망의 메시지라도 전해야 합니다. 독자 없으면 작가도 없습니다. 독자와 작가는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와 같습니다. 작가가 독자라는 존재를 잊는 순간 읽고 쓰는 세상은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글 한 편 쓸 거라고요? 그렇다면, 독자 붙잡고 늘어지세요. 오직 독자만 생각하며 쓴다면, 그 마음이 무조건 길을 찾게 해줄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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