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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12. 2023

글쓰기, 버릴 용기만 있다면

바들바들 떨지 말고 확 버리기


쓰고 싶다 하면서도 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욕심이다. 첫째, 잘 쓰려는 욕심이다. 둘째, 자신이 쓴 글은 하나도 버리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다. 셋째, 남들로부터 인정 받고 싶은 욕심이다. 이 세 가지 욕심이 한 줄 쓰기를 가로막는다. 싹 다 버리고 나면 가벼워진다. 가벼우면 비로소 쓸 수 있다.


2016년 1월 4일. 블로그에 첫 글을 발행했다. 이전까지는 블로그에 글 한 편 쓰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첫 글인만큼 뭔가 그럴 듯하고 사람들 시선을 확 사로잡을 수 있는 그런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깨도 무겁고 마음도 뻑뻑해서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하면서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블로그 글 한 편에 수천 명이 몰려올 것도 아니고, 블로그로 인생 역전할 생각도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블로그 글쓰기 원칙들은 하나 같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내 멋대로 쓰기로 했다.


다 내려놓고 나니까 블로그에 첫 글을 올리는 게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썼다. 처음에는 몇 명이 방문해서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감사했다. 또 썼다. 더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댓글도 남겨주었다. 정성껏 답글도 달았다. 하루 방문자 약 200명 또는 300명. 업계에서 보면 저품질 블로그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더 없이 만족스럽고 감사한 결과였다.


8년째 쓰고 있다. 하루도 빠짐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쓴다. 하루 방문자는 여전히 200~300명 정도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그들은 내 글을 기다린다. 정성껏 읽어준다. 수익화? 그런 건 관심 없다. 블로그 말고도 돈 벌 수 있는 기회는 많다. 적어도 블로그 만큼은 내 멋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장(場)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만약 내가 블로그에 글을 '잘' 써서 돈도 벌고 다른 성과도 내고 수익도 빵빵하게 내길 바라는 마음 갖고 있었다면, 아마도 일찌감치 접었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일을 하든 '또 다른 목적'은 사람을 무겁게 만든다. 힘들게 한다. 스트레스 준다. 멀쩡하게 게임 즐기던 아이도 프로 게이머 입문하면 살이 쪽 빠진다. 기꺼운 마음으로 책 읽고 서평 쓰던 사람이 갑자기 독서와 서평 쓰기로 강의하고 돈벌이 생각하면, 그 꼴이 아주 우스워진다. 어깨에 걸친 욕심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그 일을 즐기면서 할 수가 있다.


책을 쓰기 전에 제목과 목차를 기획해 수강생들에게 나눠준다. 어떤 사람은 기획안을 받자마자 바로 집필에 들어가고, 또 다른 사람은 몇 날 며칠 제목과 목차를 끌어안고 지낸다. 막 쓰기 시작하는 사람은 마음이 가볍다. 쓰고 또 쓴다. 아니면 버린다. 다시 쓴다. 고쳐 쓴다. 그런 수고를 부러 피하지 않는다.


계속 끌어안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무겁다. 한 페이지 쓰면 그게 곧 책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껏 쓴 글을 지우고 다시 쓰라 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낀다. 일부 고쳐 쓰라고 하면 짜증을 부린다. 다시 쓰고 고쳐 쓰라고 하면 아예 자기 원고를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부담스러워한다. 미룬다. 시간만 끈다. 아까워서 바들바들 떤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라는 원고를 수도 없이 많은 버전으로 집필했다. 헤밍웨이도 <노인과 바다>를 400번 고쳐 썼다고 한다. 세계적인 대가들도 자신의 원고를 지우고 다시 쓰기를 꺼려 하지 않는데, 우리가 뭐라고 고작 초고를 써 놓고 버리기를 아까워 하는가 이 말이다.


평어체와 경어체, 둘 중에 어떤 문체가 나을까? 둘 다 써 보면 안다. 자신에게 어떤 문체가 잘 맞는지 둘 다 써 보기만 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써 보지 않고 질문한다. 왜? 굳이 두 편의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두 편 썼다가 한 편 버리는 것보다, 애초에 딱 정해서 한 편만 쓰고 끝내는 게 더 현명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버리는 것은 실제로는 버리는 게 아니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이미 실력도 늘었고 생각도 깊어졌다. 얻을 것은 다 얻었으니 버려도 된다. 마음 편안하게 버려도 된다. 자기 글을 버릴 줄 알아야 글쓰기 실력이 는다. 버려도 아무 상관 없다. 우리는, 반드시, 더 잘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메모지에 적어도 된다. 휴지 조각에 써도 된다. 연습장에 마구 갈겨도 된다. 전부 글이다. 그러나, 많은 초보 작가들이 노트북을 펼치고 한글 파일을 열어서 깔끔하게 몇 줄 적어야만 글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저기 마구 휘날려 써도 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야 글쓰기 자체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다.


아예 버리겠다고 작정하고 써 보라. 지금 내가 쓰는 이 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연습하는 거라고, 쓰다가 괜찮은 내용 있으면 한 줄 정도 살릴 거라고,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쓰면 하루에 서너 편도 쓸 수 있다.


한 줄에 사활을 걸고 한 편에 목숨을 걸고 한 권에 인생을 거니까, 글쓰기 하면 아주 치가 떨리는 것이다. 아무도 그런 부담 준 적 없고, 누구도 잘 써야 한다 강요한 적 없다. 자신의 욕심이 자기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고, 그 무게에 눌려 글을 제대로 쓰지도 못할 지경이니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일전에 누가 질문한 적 있다. "저는 노벨 문학상 받을 겁니다!" 질문한 사람 무안할까 봐 그냥 대충 넘기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노벨 문학상이 무슨 상인지는 아는가? 어떤 사람한테 주는 상인지는 아는가? 그 상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가? 그래서 자신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단 한 마디도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건 꿈이나 목표가 아니라 썩어빠진 망상에 불과하다. 이런 마음을 품고 있으니 한 줄 쓰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쓰지 않으니 실력이 늘 리가 없고, 실력이 늘지 않으니 점점 더 쓰기 싫어질 테고,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다.


그냥 쓴다. 다시 쓴다. 고쳐 쓴다. 아니다 싶으면 버린다. 또 쓴다. 이 과정을 열 번 반복하면, 썩 괜찮은 문장 몇 개 건질 수 있다. 따로 챙겨놓고 또 쓴다. 실력이 점점 향상된다. 쓰는 재미가 들여져 매일 쓴다. 잘 쓴 문장이 많아진다. 자신감 붙는다. 계속 쓴다. 책도 낸다. 쓰는 삶을 누리고 즐기게 된다.


돈 되는 글쓰기? 이렇게 접근하니까, 돈 안 되면 바로 실망한다. 상처 받는다. 팔리는 책쓰기? 그래서 안 팔리면 좌절한다. 절망한다. 속았다 생각한다. 정 떨어진다. 다시 펜 잡기가 어려워진다. 제대로 써 본 적도 없이, 자신의 역량을 발굴하지도 못한 채 사라진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싹 다 적어 보라. 그런 다음, 매 순간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써 보라. 하루를 온전히 다 적으면 못해도 A4용지 서너 장은 거뜬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어제라는 하루는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정리 한 번 해 보라. 이게 끝이다. 40일간 쓰면 책 된다. 못 썼다 싶으면 고치고, 아니다 싶으면 버리고, 부족한 분량은 다시 채운다. 욕심만 버리면 누구나 글도 쓰고 책도 낼 수 있다.


대형 출판사랑 계약하고 싶어요! 머리에 똥이 많이 차서 그렇다. 대형 출판사는 당신의 원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자신을 직시할 줄 모르고, 노력도 치열하게 하지 않으면서, 결과만 그럴 듯하기를 바라는 욕심이다. 잘 것 다 자고 먹을 것 다 먹고 스마트폰 끼고 살면서 서울대 가고 싶어요 외치는 고3이랑 무엇이 다른가.


욕심! 그놈의 욕심이 문제다. 더 심한 말로 모욕감을 주어서라도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그 욕심을 꺾어주고 싶지만, 욕심 많은 사람은 멘탈도 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최대한 절제하고 쓰는 중이다.


나는 욕심 때문에 인생 절반을 통째로 날렸다. 욕심 하면 자다가도 벌떡 깬다. 세상 누구도 나와 같은 시련과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너무 아프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부탁하건대, 노력한 만큼의 결실만 바라는 정직하고 반듯한 태도 가지길. 그렇게 하면, 세상이 알아서 보상 다 해주고 성과 다 내준다.


오늘 글 한 편 쓰고, 그 글을 과감하게 버려 보자. 아깝다는 생각 때문에 도저히 못 버리겠으면, 폴더 하나 만들어서 그 곳에 보관하기로 하자. 폴더 이름을 '쓰레기통'이라고 정하고, 매일 쓰는 글을 그 곳에다 묻어두자. 언젠가 멋진 작가가 되어 그 쓰레기통을 열어 보면, 자신의 노력과 성실했던 과정을 떠올리며 눈물 흘리게 될 터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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