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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우면 쓸 수 있다

미친놈처럼

by 글장이


오늘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가정해 보자.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죄를 뒤집어썼다. 상대방은 인신공격까지 서슴지않는다. 분하고 원통하다. 얼마나 화가 나면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자, 이런 일을 실제로 겪었다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일단 집에 오자마자 남편이나 아내를 붙잡고 속풀이를 할 터다. 목소리도 크게. 아마 부들부들 떨 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서도 동료를 앉혀놓고 입에 거품을 물고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친구들 만나면 두세 시간 정도는 마구 수다를 떨 수도 있겠다.


내 속에 뭔가 부글부글 끓으면 밖으로 쏟아내지 않고는 못배긴다. 지극히 내성적인 성향의 사람이라도 크게 분통 터지는 일을 당했을 경우에는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 하게 마련이다.


남편이나 아내한테 근사한 선물을 받았다고 치자. 특별한 날도 아니고 무슨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불쑥 선물을 내민다. 노트북일 수도 있고 핸드백일 수도 있고 시계일 수도 있다. 어쩌면 더 비싸고 고급진 선물일 지도.


입이 근질거린다. 너무 좋다! 아무라도 붙잡고 자랑하고 싶다. 일단 SNS에 올린다. 이리 찍고 저리 찍은 사진을 여러 장 올리고, 그 아래에다 무심한 듯 선물 받았다고 쓴다. 사람들이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좋겠다 부럽다 댓글을 단다. 아! 행복하다! 와 이리 좋노!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 그립다. 보고 싶다.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비를 보니 다시 그리움이 솟구친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이미 곁을 떠난 지 오래인데, 궁상맞게 휴대 전화를 쳐다보고 있다.


시험에 합격했다. 고생한 보람 있다. 좋아서 방방 뛰고 싶다. 가만히 있질 못하겠다. 누구한테 전화하지? 저절로 웃음이 난다. 앞으로 일어날 좋은 일들을 상상하니 심장이 춤을 춘다.


파리 여행 다녀왔다. 생애 처음이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거리 풍경, 에펠탑, 카페, 연인들...... 모든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한국인지 파리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바람에서 파리의 향기가 나는 듯하다.


뜨거울 때가 있다. 고민하지 않아도, 쥐어짜지 않아도, 저절로 글이 써진다. 글 쓰는 맛이 난다. 어느새 한 장을 다 채웠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다. 대체 그 동안은 왜 글 쓰기가 힘들었던 것인지. 억울하고 분한 일 생겨도, 기쁜 일 생겨도, 슬픈 일 생겨도, 여행을 다녀와도...... 가슴이 뜨거우면 글 쓸 수 있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매번 뜨거운 일이 생기길 기다려야만 하는가? 아니다. 스스로 뜨거워지면 된다. 무엇에? 자기 자신에게. 일상에게. 보고 듣는 모든 것에. 지금의 나를 사람들에게 전하겠다는 강렬한 열정만 품으면 저절로 뜨거워진다.


오늘 무엇을 했는가 라는 질문에 그저 그랬어요 라고 답변하지 말라! 무조건 생애 최고의 하루였다고 답하라. 그러고나서 이야기를 시작하라. 허풍이라도 좋다. 온마음 다해서 오늘을 '최고'로 만들어라. 목소리도 크게 하고 손짓 발짓 섞어가며 흥분하라.


- 오늘 아침 반찬으로 멸치볶음을 먹었거든요. 세상에! 저는 멸치라는 음식이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입안에 넣기 무섭게 고소한 맛이 확 풍기고, 씹을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는 거예요.


- 친구랑 통화했거든요. 평소에 자주 만나는 친구인데 오늘따라 목소리가 맑고 행복하게 들렸습니다. 친구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까지 행복해지는 것 같았어요. 행복이 전염된다는 말은 사실인가 봐요. 지금도 귓가에 친구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 SNS에 댓글이 한 줄 달렸는데요. 저, 그거 읽다가 울 뻔 했잖아요. 제 심정을 이해해 주는 것 같았어요. 누군지도 모르는데, 시간이 멈춘 것 같고 세상에 나를 위해주는 든든한 동지가 있는 것 같아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거짓으로 쓰는 건 권하고 싶지 않다. 그런 글은 진실성에 위배된다. 하지만 감정은 다르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문제는 오롯이 내가 결정할 문제다. 그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나다. 인생은 일어난 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완성된다.


흥분하라! 광분하라! 이왕이면 즐겁고 행복하고 기쁘고 만족스러운 감정에 몰입하라!


나는 감옥에서도 웃었다. 막노동판에서도 웃었다. 뭐 그리 웃을 일이 있었겠는가. 죽지 못해 살았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지. 하지만 사실이다. 미친놈처럼 웃었다. 같은 방 쓰는 사람들이 나보고 미쳤다면서 말도 걸지 않았다. 덕분에 감빵생활 편하게 했다.


견딜 수 있었다. 스스로 감정을 격하게 만든 덕분이었다. 즐겁다고 생각하고 즐거운 척 살았다. 세상에! 감옥에서 말이다! 그런데, 즐거운 척 지내니까 진짜 즐거운 줄 착각하게 되었다. 고통스럽게 지내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그 후로 철저하게 지킨다. 행복한 감정 쪽으로 무조건 몰아붙인다. 과장한다. 오버한다. 크게 웃고 몸을 흔든다. 박수도 친다. 목소리마처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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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우면 쓸 수 있다. 글 쓰기가 힘들다 어렵다 하는 사람은 마땅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전하고 싶어 환장하는 상태라면 어찌되든간에 쓰고야 말 것이다.


뜨거워져야 한다. 뜨거우면 글도 쓸 수 있지만, 인생도 달라진다. 무엇보다,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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