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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27. 2023

상처, 용서하기로 했다

마음 하나 바꾸면 그만


실패는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저는 또 실패를 기꺼이 하려고 합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 이면에 성장과 깨달음의 기회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매일 한 번씩 그때를 돌이킵니다. 아파서 기억하기 싫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자꾸 기억하니까 덜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무너졌을 때, 도저히 빚을 감당할 길이 없어 부모님한테 손을 내밀었습니다. 평생을 바쳐 일해온 대가로 겨우 손에 쥐고 계셨던 집 한 채와 연금. 제가 모조리 빼먹고 말았지요. 어리석은 짓이었고, 후회 막급한 행동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저는, 제가 가진 모든 재산과 부모님 재산까지 사업 실패로 탕진하고야 말았습니다.


제 인생 가장 아팠던 시기인데요. 어느 날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야! 너 만약 아버지와 어머니 집 그거 어떻게 되면 내가 절대로 용서 안 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힘들어서 자살 시도만 되풀이하고 있던 시절인데, 하나밖에 없는 누나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정말 더 이상 희망 없는 인생이구나 싶었습니다.


저도 속상한 기분에 누나한테 대들었지요. 내가 사업하고 또 실패하는 과정에서 누나가 뭘 해준 게 있냐고 말이죠.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소리를 버럭 지른 후에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 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너, 누나한테 욕하고 소리 질렀다면서? 누나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러냐! 앞으로 누나한테 한 번만 더 그 따위로 대하면 나도 널 아들로 생각지 않을 거다!"


온몸에 힘이 쪽 빠졌습니다. 세상이 모두 나를 버리는데, 이제는 가족마저 나를 등지는구나 싶었지요. 평소와 달리, 인생 최악의 시기인데 가족이 좀 든든하게 지켜주면 어땠을까 원망고 분노가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당시에는 어머니고 누나고 다시 안 봐도 그만이라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아무 일 없을 때 싸우고 함부로 말하는 건 쉽게 잊혀집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 들은 말은 평생 상처로 기억됩니다. 교도소에서, 그리고 막노동판에서 삽질하면서도 어머니와 누나가 제게 했던 그 말과 서운한 행동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저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금전적으로도 풍요롭고, 사업도 승승장구하고, 세상 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강해졌습니다. 비슷한 일 또 겪는다 해도 거뜬하게 마주하고 이겨낼 자신 있습니다. 사는 게 이런 거구나 새삼 느끼며 동시에 즐기고 있습니다.


누나의 삶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작년에는 저한테 전화해서 돈을 좀 빌려달라 하더군요. 매형 일도 안 풀리고, 누나 일도 힘들어지고, 애들은 점점 자라 대학에도 가야 했지요. 여기저기 돈 들어갈 일은 많은데, 형편이 풀리기는커녕 더 안 좋아지니까 고민 끝에 저한테 전화를 한 모양입니다.


그냥 저한테 바로 전화한 것은 아니고요. 어머니와 둘이 통화하면서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나 봅니다. 어머니가 누나한테 권했다 합니다. "은대한테 한 번 부탁해 보자."


벼랑 끝에 간신히 서 있던 저를 매몰차게 밀었던 두 사람. 저는 그 생각으로 혓바닥 씹어가며 모진 세월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형편 어렵다며 손을 내민다는 것이 어이가 없고 기가 찼지요. 순식간에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구차한 이유와 변명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날 바로 계좌 묻고 필요하다는 금액 만큼 송금했습니다. 저녁 먹으면서 입도 벙긋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따지지도 않았고, 누나한테 송금했다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돈 빌리는 사람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거짓말과 변명과 핑계와 굴욕을 감당해야 하는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누나에게 그런 수치와 모멸을 주고 싶은 마음 없었습니다. 어머니 가슴에 내가 당한 만큼의 상처를 심어주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용서. 저는 생애 처음으로 그걸 한 번 해 보았습니다.


가족끼리 있었던 일 가지고 무슨 용서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만큼 아픔과 상처가 컸기 때문입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괘씸하고 원망스러웠거든요. 이 자리를 빌어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습니다. 혹시 가족 중 누군가 실패나 실수를 한다면, 꼭 좀 안아주세요. 처음부터 실패하겠다 작정하고 시작하는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세상이 다 욕해도 가족은 품어주어야 합니다.


아무튼 저는, 누나에게 두 번 말하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첫째, 내 상황이 썩 괜찮기 때문입니다. 만약 저도 지금 먹고 살기 힘든 상황이라면 아무리 마음 좋아도 그렇게 도와줄 수 없었겠지요. 둘째, 그래도 누나이기 때문입니다. 저한테 모질게 욕한 것도 입장 바꿔 보면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핏줄이니까요. 셋째, 금전적으로 힘든 상황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거 참 고통스럽고, 누구한테 하소연하기도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동생한테 전화했겠나 싶었지요. 넷째, 용서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아버지와 어머니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용서'라는 걸 하고 난 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오랜만에 푹 잤습니다. 마음이 한결 가볍고 편안해졌습니다. 잘했다 못했다 재고 따지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고, 지금은 또 이런 일이 있었다. 팩트로 받아들이면 그만이었습니다.


저도 이익 많이 따지는 사람입니다. 원수는 반드시 갚아주고, 당한 만큼 복수하고, 상처와 아픔 준 사람 꼭 되돌려주고야 마는 성격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모진 세월을 고통 속에 보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조금 바보 같은 결정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 마음이 이토록 편안하고 숨소리가 안정을 되찾았다는 건 '잘한 일'이라는 증거일 테지요. 당한 만큼 되돌려주는 것만이 인생 법칙은 아닌 모양입니다. 상처와 아픔은, 받은 사람이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주는 사람이 괴로워야 마땅한 일이지요.


누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어머니는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들이 죄책감이나 미안한 마음 혹은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을까 이런 건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든 상관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미 용서를 통해 제가 얻을 수 있는 걸 다 얻었습니다. 이제 됐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진 덕분에, 이제 저는 더 집중하고 몰입해서 제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건강도 회복하고 책도 쓰고 수강생도 챙길 겁니다. 행복은 언제나 마음에 있고, 나의 선택에 따라 당장 누릴 수 있는 감정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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