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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Sep 09. 2023

마음 복잡하고 혼란스럽다면, "목격자 관점"

한 걸음 물러나기


관점은 중요합니다. 똑같은 일이라도, 내가 겪으면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친구가 겪으면 내가 겪을 때만큼 시련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같은 일을 겪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거의 감흥이 없기도 합니다.


직접적인 관점으로는 그 상황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객관적 판단력을 상실합니다.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길도 보이고 답도 보이게 마련입니다. 쉬운 예가 바둑입니다. 본인이 직접 바둑을 두고 있을 땐 잘 보이지 않던 수가 다른 사람 바둑 두는 걸 구경할 때는 잘도 보입니다. 1인칭 시점으로만 살 것인가, 아니면 때로 3인칭 시점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평온하고 행복한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는 일상에서야 어떤 관점을 갖고 살든 크게 문제 될 것이 없겠습니다만, 심란하거나 마음 복잡할 때는 이러한 관점의 선택이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는 항상 별일이 다 생기게 마련입니다. 모조리 대안을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불시에 닥치는 감정적 파도에 일일이 현명한 처신을 한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관점 전환을 통해 마음의 파도를 줄이는 연습을 하면, 일상의 다양한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 글을 쓰면 "목격자 관점"이 가능합니다!


문제에 사로잡히면 냉철함을 잃게 됩니다. 판단과 선택을 잘해야 하는데, 냉철함을 잃으면 제대로 된 결단을 내리기가 힘들겠지요. 이럴 때 제 3자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글을 쓰면, 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팀장으로부터 심한 말을 들었다고 칩시다. 제가 지금 "심한 말"이라고 적었지요? 이것이 바로 1인칭 시점입니다. 제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적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팀장의 말이 심했는지 아닌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르게 판단할 겁니다. 내가 생각한 "심한"이라는 감정은 전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팀장이 한 말, 그리고 나의 대답, 팀장의 표정과 제스처, 주변 직원들의 분위기, 이어지는 나의 행동. 이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사실' 표현입니다.


팀장이 나를 불렀다. 책상에 가방을 올려놓고 팀장 책상 앞으로 갔다. "이걸 보고서라고 작성한 건가?" 팀장은 한 손으로 안경을 치켜올리며 다른 한 손으로는 내가 제출한 서류를 펄럭거리며 흔들었다. "뭐가 잘못됐나요?" 팀장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고요했다. 주변 직원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사무실 안에 팀장과 나 단 둘만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일찍 퇴근할 생각 하지 말고, 밤을 새워서라도 보고서 다시 써서 제출하도록 해!" 갑작스러운 팀장의 호통에 뒤로 물러날 뻔했다. 팀장이 휙 집어던진 서류뭉치가 펄럭거리며 바닥에 흩어졌다. 나는 허리를 숙여 보고서를 한 장씩 주웠다.


위 예문은 모두 '사실'로만 이루어진 글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사무실 안에 팀장과 나 단 둘만 있는 것 같았다" 정도만 개인적 느낌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 문장도 글의 맥락이나 사실 여부에 의심을 가질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독자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이지요.


제 3의 어떤 존재가 되어 '팀장과 나'를 내려다 보는 듯한 글입니다. 작가는 '나'이면서 동시에 한 걸음 물러난 존재입니다. 객관적으로 썼습니다. 팀장을 향한 나의 불쾌함이나 감정적 반응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의 전달에 충실했습니다. 모든 분위기와 감정은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작가는 자신의 감정에서 벗어나 '관찰'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목격자 관점, 관찰자 시점의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요? 정답은 없겠지만, 참고하면 도움 되는 4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아래 내용 대로 연습하면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때 자기 감정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첫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씁니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씁니다. 디테일을 살려야 현장감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말이죠.


둘째, 감정적 표현을 최대한 절제합니다. 기뻤다, 슬펐다, 짜증났다, 화 났다, 괴로웠다, 미치겠다, 죽고 싶었다, 속상했다, 우울했다 등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는 우리 감정을 제한하고 팩트를 희미하게 만듭니다.


셋째, 다양한 어휘로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화가 났다'라는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감정을 아우르는 일반형 표현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운했다, 서러웠다, 섭섭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약이 올랐다, 괘씸했다, 분했다, 억울했다, 분통 터졌다, 기가 막혔다, 속이 상했다, 미웠다, 내 생각과 달랐다, 뜻밖의 반응이었다...... 한글에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단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늘 사용하는 단어 몇 개로만 일상을 살아갑니다. 단어를 확장하는 것은 자신의 우주를 확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 많은 감정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넷째, 결론을 딱 마무리 짓지 말고 '열린 마무리'로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팀장이 화를 냈고, 그래서 나도 화가 났다"라고 마무리를 지어 버리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해석할 여지가 없습니다. 생각할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죠.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마무리하면, 작가와 독자는 열린 사고를 할 수가 있습니다. 누가 옳은가, 옳지 않은가, 옳지 않다면 어느 부분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고치면 좋겠는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말과 태도가 바람직한가. 끝도 없이 사고를 확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순간의 감정 자체보다는 더 나은 삶을 향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생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목격자 관점에서 글을 쓰면, 가장 좋은 점은 쓰는 과정에서 이미 감정의 대부분이 상당히 가라앉는다는 사실입니다. 살아온 날들 대부분 실수와 실패는 감정에 휩싸였을 때지요. 하여간 그놈의 극단적 감정이 문제입니다. 감정만 잘 다스리고 자신에게 이롭게 활용한다면 인생 큰 문제들을 미리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목격자 관점의 글쓰기는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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