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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Sep 11. 2023

흔들리는, 감동의 생일선물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붓글씨 대회에서 상을 탄 횟수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타오신

상장과 상패와 선물들을

방바닥에 쫘악 깔아놓고

가족 모두 기뻐했던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저와 친척, 주변 사람들은

붓글씨 하면 아버지를 떠올릴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입춘대길" 써달라는 요청,

"가화만사성"을 비롯한 각종 가훈들,

제사 때 올리는 지방 한 장까지

많은 이들이 아버지께 글씨 써주십사

부탁을 하곤 했지요.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데

방에서 한참 나오지 않으십니다.


분명히 식사 말씀 드렸는데도

알았다 대답만 하시고는

문을 꼭꼭 걸어잠근 채

시간을 끄는 거였지요.


10분쯤 지나서야 나오셨습니다.

그러고는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뜨기도 전에 입을 여십니다.


"오늘 너 생일이지? 축하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끄럽다는 듯 아들인 제게

봉투를 건넵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습니다.


감동의 눈물도 아니었고,

기쁨의 눈물도 아니었습니다.


여든 두 해.

모질고 고단했던 세월에

아버지의 붓글씨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로세로 뻗는 순간마다 힘이 넘치고

글자 하나에 담긴 기상이 하늘을 치솟고

좌우 마치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쭉쭉 뻗어내려갔던 아버지의 붓글씨.


그러나 이제는,

선 하나에 수백 번 흔들림이 있고

줄도 맞지 않으며

삐뚤삐뚤합니다.


아들의 생일선물을 주기 위해

쌈짓돈 아껴 봉투에 담으셨고,


근사하게 몇 줄 적어주고 싶어서

새벽부터 책상 앞에 앉아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부여잡은 채

한 줄 한 줄 써내려갔던 것입니다.


겨우 참았습니다.

약한 모습 보이기보다는

아버지 어머니 선물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받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인사를 정중히 드린 후,


"앗싸! 부자 됐다!"

난리법석을 피우며 좋아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생일선물로 '봉투'를 받은 것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고,


아내와 아들 둘이서

새벽부터 일어나 장만한

미역국, 불고기와 갈치구이도

더 없이 맛있고 행복한 선물입니다.


근사한 생일상, 그리고 선물.

아직도 낯설고 어색합니다.


고꾸라진 인생 바로 세우기 전까지는

생일이고 뭐고 챙길 여유 없다며

그냥, 대충 넘기곤 했었지요.


막상 받아 보니 좋습니다.

정성과 사랑으로 준비해주는 가족,

그들과 함께 하니 기쁩니다.


소중한 마음 잘 간직하고

주어진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돈 생겼습니다.

뭐 사지?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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