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치지 말고 구체적으로
"힘들었다"라고 쓰면 설명하는 글이 됩니다. "40킬로그램 시멘트 포대를 등에 지고 5층까지 나르는 일을 세 시간 동안 했다"라고 쓰면 독자 눈에 장면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작가 입장에서는 "힘들었다"고 쓰는 것이 훨씬 편하고 쉽습니다. 독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작가가 쓴 글을 그저 "읽어야만" 합니다. 글 쓰는 이유는 독자를 위함입니다.
힘들었다, 좋았다, 나빴다, 슬펐다, 괴로웠다, 짜증 났다, 행복했다, 불행했다...... 이런 어휘들을 "퉁치는 표현"이라 합니다.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풀어 쓰는 게 아니라, 그냥 감정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하려는 방식이지요.
이번 추석 연휴 어땠냐고 물으면, "별로였다"고 합니다. 지난 달에 다녀온 여행 어땠냐고 물으면 "좋았다"고 하고요. 오늘 기분 어떠냐고 물으면 "그저 그렇다"고 답합니다. 말하기 싫으니 말 시키지 말라는 소리 같습니다. 묻는 사람의 궁금함을 전혀 해소해주지 못합니다. 차라리 대화를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스위스 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 어땠냐고 물었더니 "끝내준다"고 대답합니다. 뭐가 그리 끝내주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독자는 무엇을 바랄까요? 스위스 풍경을 대략이라도 머릿속에 한 번 그려 보고 싶을 테지요. 작가는 스위스에 다녀온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스위스에 다녀오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그 경험을 나누는 것이 작가의 책무입니다.
인생 다른 경험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쓴다는 건, 내가 겪은 일을 독자에게 전함으로써 그들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행위입니다. '돕는' 행위이기 때문에 글쓰기/책쓰기를 위대하다고 표현하는 것이죠.
이왕 도우려면 제대로 돕는 게 낫겠지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가. 육하원칙에 따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독자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질 수 있도록 써야 합니다. 카피라이터 정 철 작가는 이를 두고, "작가는 글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지요.
수요일 밤 9시부터 두 시간 동안 70명 예비 작가님들과 "온라인 책쓰기 수업 116기, 1주차" 함께 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피곤하고 지칠 법도 한데, 모두가 집중하고 경청해주어서 강의하는 저도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독자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는 구체적인 글쓰기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수강생 중 한 명에게 어제 무엇을 했는가 질문하고, 그 대답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글쓰기" 시연하기도 했습니다. 퉁치는 표현을 삼가하고 구체적으로 쓰는 습관 들이면 세 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첫째, 글에 생동감이 넘칩니다. 살아 있는 글이 되는 것이죠. 독자가 내 글을 읽는 동안, 마치 본인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자기 객관화가 가능합니다. 그냥 "화났다"고 쓰면 해석의 여지가 없습니다. "팀장이 어떻게 말했고, 내가 어떻게 대답했고, 팀장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행동을 했으며, 나는 또 어떻게 했다"라고 구체적으로 쓰면,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을 막을 수 있습니다.
셋째, 분량 걱정이 사라집니다. 위 예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퉁치는 표현은 한 줄로 끝납니다. 구체적으로 쓰면 상당한 양으로 확장할 수 있지요. 초보 작가의 경우 분량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습니다. 구체적인 글쓰기로 스트레스 날려버리기 바랍니다.
글 쓰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어느 한 가지만 활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저나 누군가가 말한다 해서 그것이 정답일 수도 없습니다. 책도 읽고 강의도 들으면서 하나씩 공부하고 연습해서 자기만의 노하우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