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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Oct 06. 2023

<영웅본색>, 가볍게 사는 법

집착하지 않는 인생


돈을 좋아했습니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집착했지요. 돈이면 전부라고 믿었습니다. 인생 목표를 돈에 두었습니다. 가족 챙기는 것도 돈 많이 번 다음에 두었고, 친구도 돈 버는 일 다음이었습니다. 돈 벌 수 있는 일을 선택했고, 돈과 관련 있는 일만 했으며, 돈이 모든 선택과 판단의 기준이었습니다. 


어제 틱톡 영상에서 오랜만에 배우 주윤발을 만났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제가 중학교 때 열광했던 쌍권총의 아이콘입니다. 긴 코트를 펄럭이며 적을 향해 총을 쏘고 의리를 위해 목숨도 바치는 영화 속 그의 모습은 사춘기 남자 아이들의 혼을 빼놓기 충분했습니다. 


전례 없는 금액. 무려 8100억원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기자와 팬들 앞에서 기부한 내용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가 답한 내용입니다. 

"내가 기부한 게 아니라 아내가 기부한 것이다. 나는 기부하기 싫었다. 힘들게 번 돈이다.(농담) 나는 얼마를 기부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용돈 받고 산다. 하루 두 끼면 충분하다. 요즘은 당뇨가 있어 한 끼 먹을 때도 많다. 세상에 올 때 빈 손으로 왔다. 갈 때 빈 손으로 간다고 해서 아쉬울 것 없다."


인터뷰 내용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말을 하는 동안 내내 편안하고 안정적인 그의 표정이었습니다. '자유'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열네 살 때 제 마음을 흔들었던 우상이 나이 들어서도 그토록 평온하고 멋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나이를 더 먹고 노인이 된다 하더라도, 꼭 그와 같은 인상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주윤발은 돈을 싫어한 게 아니었습니다. 돈 필요 없다며 거지처럼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극히 정상적으로 돈을 벌었고, 또 열심히 살았습니다. 저와 다른 점은, 그는 돈에 집착하지 않았고 그저 삶을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주어진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 그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세상 당당한 제가 상대는 보지도 못하는 틱톡 영상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내 수중에 8100억원이 있다면, 그 돈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을 수 있을까. 쉽게 답하지 못하는 제가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남자의 멋'과 '의리'를 심어준 그가, 이번에는 중년에 이른 제 마음에 '품격'을 전해줍니다.


돈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돈에 집착하는 건 돈의 노예가 된다는 뜻이지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람에게 집착하는 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글 쓰고 책 읽고 자기계발하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런 행위에 강박을 느끼고 집착하는 것은 인생을 노예로 사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뭔가에 집착하면 자유롭지 못합니다. 돈에 미쳐 있으면 돈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누가 돈 준다고 하면 금세 굽신거리고, 돈 안 되는 일이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돈 앞에 무릎 꿇으라면 두 번 생각지도 않고 내려 앉습니다. 뇌물, 횡령, 사기, 강도, 반인륜 행위 등 입에 담지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모두 돈 때문입니다. 아닌 것처럼 살면서도, 실제로는 많은 사람이 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성공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누구나 "쉽게, 빨리" 돈 벌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광고가 넘쳐납니다. 마치 나 혼자만 빌빌거리며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고 맙니다. "코인 투자 안 하면 바보다"라고 저한테 목에 핏대를 세우며 권하던 친구가, "코인 때문에 다 날렸다" 울먹이며 전화를 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성공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업 실패 후, 꽤 오랫동안 무거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시절에 깨달은 바가 있는데요. 마음 편안하게, 가볍게 사는 것이 최고라는 이치입니다. 아무리 돈 많아도 맨날 걱정 근심 가득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주변에 사람 아무리 많아도 매 순간 쓸쓸함을 느낀다면 그 많은 사람 다 필요 없지요. 글 쓰고 책 읽으면서 조급함과 강박과 초조함을 느낀다면 쓰고 읽을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건, 뭔가 기대하는 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고요. 그 기대가 도를 넘어 집착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합니다. 사람들 만나 이야기 나눠 보면, 늘 편안하고 따뜻해서 같이 있기만 해도 기분 좋은 사람이 있고요. 반면, 뭔가에 쫓기는 듯하고 눈치를 살피며 좌불안석 안절부절하는 사람도 꽤 많은 듯합니다. 


최근 출간된 <집착의 법칙>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0배의 법칙>을 쓴 그랜트 카돈의 신작인데요. 역시 그답게 열정과 노력과 인내와 치열한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강조하는 건설적이고 도전적인 집착이라면 굳이 말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도 배우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마음 생길 정도입니다. 이와 달리, 대상이 무엇이 됐든 맹목적인 집착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랜트 카돈이 말하는 '건설적인 집착'과 제가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맹목적인 집착'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건설적인 집착은 '좋아서 행복한' 겁니다. 맹목적인 집착은 '좋아서 불안한' 거지요. 아침 5시 알람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힘차게 일어난다면, 그것은 미라클 모닝에 대한 건설적인 집착입니다. 알람 소리 울리기 무섭게 짜증을 내고 인상을 쓰고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것은 맹목적인 집착이지요.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매일 글 쓰는 것은 건설적인 집착입니다. 쓰기 전에는 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힘들어 하고, 쓰는 동안에는 잘 안 써진다고 괴로워하고, 다 쓰고 나면 잘 못 썼다며 자책하는, 그런 태도로 쓰는 것은 맹목적인 집착입니다. 


산에 오르면서 "아, 좋다!"하면 건설적인 집착입니다. 산에 오르면서 "산아, 산아, 내가 널 좋아하니 너도 날 좋아해라!" 이런 마음이라면 그것은 맹목적인 집착이지요. 바다가 좋아서 바다를 사랑하면 건설적인 집착입니다. 바다가 좋다는 이유로 바다로부터 사랑 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 있다면, 그 사람은 바다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냥"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사람도 그냥 좋고, 글 쓰는 것도 그냥 좋고, 책 읽는 것도 그냥 좋고, 사는 것도 그냥 좋습니다. 사람 만날 때도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글 쓰고 책 읽는 데에도 목적이 있어야 하며, 사는 데에도 돈이나 성공 따위에 집착하는 것은 스스로 힘들게 만드는 태도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과정은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지요.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괴롭고 힘들기만 하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웃으면서 재미있게 노력해도 얼마든지 목표 달성하고 꿈꾸는 인생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웃는 거였습니다.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다 싶어서, 죽을 때 죽더라도 실컷 웃고 가야겠다 결심한 거지요. 틈만 나면 재미 있는 이야기를 했고, 툭하면 웃었고, 뭘 해도 농담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감옥에서는 저를 "미친놈"이라 했고, 막노동 현장에서는 "일이 장난이냐"며 맨날 혼이 났겠습니까. 사람들은 제게 "가볍게 사는 게 문제"라고 호통을 쳤지만, 저는 "가볍게 산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인생을 만났습니다. 


해야 한다는 강박,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집착을 내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보다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같은 일을 "그냥" 반복하는 루틴이 인생을 훨씬 가치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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