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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Oct 24. 2023

공감, 참 더럽게 힘드네

공감 받는 글, 공감하는 힘


글 쓰기가 너무 힘들어요.

맨날 작심삼일, 저 자신에게 실망입니다.

아침에 자꾸 늦잠을 자게 돼요.

좋아하는 일 찾기가 어려워요.

뭔가 성과를 내고 싶은데 잘 안 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화부터 납니다. 개코나 글을 얼마나 썼다고 힘들다고 징징거리는지. 작심삼일 힘들면 계속하면 되잖아! 좋아하는 일? 배 부른 소리 하고 앉았네. 잘 안 되면 방법을 바꿔서 계속해야지! 징징거라고 한탄하고 한숨 내뱉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기가 빨리는 느낌입니다. 마치 과거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더 화가 나는 것이지요.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제가 가진 진심의 10%만 말합니다. 그러고나서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더 얘기해 봐야 달라질 것도 없고, 괜히 내 에너지만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저의 습성. 공감의 부재입니다. 저는 공감할 줄 모르고, 공감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공감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제게 부족한 공감 능력이 사람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힘이고 갖춰야 할 재량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었더라면, 아마 [자이언트]는 지금보다 열 배는 성장했을 겁니다. 제게 공감력이 있었더라면, 과거 그토록 참혹한 실패도 하지 않았을 테고요. 


제가 갖지 못한 능력이라 해서 없어도 되는 건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서, 누구에게나 공감 능력이 필요합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특히, 요즘 같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온라인 시대에는 공감할 줄 아는 힘이 개인의 삶을 결정 짓는 요소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지요.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고 있으면 아무래도 공감하기가 더 수월합니다. 하지만, 온라인 시대는 텍스트로 마주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공감 받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하고, 글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도 키워야 합니다.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지식의 저주'의 확장판이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올챙이적 시절을 생각지 못하는 것이지요. 제가 맨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는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제 글 좀 쓸 줄 알게 되었다 해서 글 쓰기가 힘들다는 사람에게 화가 난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 없는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글 쓰기가 힘들다면 충분한 연습과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좌절하는 이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앞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행동은 하지 않은 채 징징거리기만 하는 이들이 갑갑하고, 그들이 좀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입니다. 실제로 그들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는가에 대해서는 함부로 단정 지을 것이 못 되거든요. 그러니, 그들의 입장과 심정을 충분히 알아 보고 공감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은 저처럼 공감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힘들다는 사람이 얼마나 힘든 줄 짚어 볼 줄 모르고, 아프다는 사람이 얼마나 아픈 줄 짐작조차 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자신의 마음이 가장 아픕니다.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공감 받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1층 공동 현관문을 들어서면 엘레베이터까지 약 4미터 정도 복도가 나옵니다. 저기 앞에 엘레베이터 먼저 탑승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제가 도착할 때까지 불과 2초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제가 가고 있다는 걸 알 텐데도 문을 닫고 그냥 올라가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요! 당장 계단을 뛰어올라가서 그 인간 멱살이라도 잡고 싶습니다. 2초만 기다려주면 될 텐데.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오늘 밖에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저기 앞에 어머니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엘레베이터를 탑니다. 얼른 가서 함께 올라가야지 싶었는데, 어머니는 무심히 엘레베이터 문을 닫고는 그냥 올라갑니다. 어안이 벙벙했지요. 자식을 버리는 건가. 2초만 기다려주시면 될 텐데. 


집에 들어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태연하게 말씀하십니다. "못 봤는데? 너 오고 있었냐?" 다리가 불편하니까 계속 바닥만 보고 계십니다. 엘레베이터 한 번 타는 것도 어머니한테는 '일'입니다. 그 와중에 뒤에 오는 사람 챙길 기력까지는 없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저를 무시했던 게 아닙니다. 다들 어머니 못지않은 무슨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어떤 사건이 상황이 생겼을 때, 무조건 내 입장에서만 해석하고 화를 내는 습관이 그 동안 저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혼자 씩씩거리고 분통을 터트리며 바보 같이 살았다는 사실에 허탈했습니다. 


공감은 온전히 그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대충 불쌍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겠다 짐작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되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 보아야 비로소 진정한 공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노숙자를 보면서, 그의 과거와 가족과 오늘 저녁밥을 생각해 보면 측은지심 저절로 생겨납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 그들도 나름의 자리에서 한 번 잘 살아 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했던 이들 아니겠습니까. 공감은 분노와 짜증과 증오를 한꺼번에 삭히는 역할까지 합니다. 공감은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체험해 보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고요. 


제 안에도 분명 공감하는 능력이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느라 가슴이 얼어붙은 모양입니다. 이제라도 조금씩 공감의 문을 열어 보려 합니다. 


블로그 포스팅을 작성하고 있는데, 뒤에서 아들이 내용을 흘깃 본 모양입니다. 

"아빠! 이제 공감 한 번 해 보려고? 흠. 잘 안 될 텐데. 아빠는 성질이 불 같아서 공감 못 할 거야."


아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아들의 말에 공감...... 하려는데...... 주먹이...... 공감 참 더럽게 어렵네요.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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