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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07. 2023

사는 게 제일 어렵다

제법 잘 살아왔으니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공부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수업만 잘 들어도 시험 문제 푸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나니 암기하고 이해하고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해서 처음으로 시험을 쳤을 때, 나는 공부로 승부를 걸 만한 인재는 못 되는구나 확신을 갖게 되었지요.


군에 복무하면서 이런 저런 훈련을 자주 받았는데요. 젊은 패기로 어떻게든 견디긴 했지만, 매 순간 이건 참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추운 날씨에, 그 더운 날씨에, 전쟁을 가상하여 땅바닥에 뒹굴로 산을 넘고 하염 없이 걸어야만 하는 훈련은 사람의 넋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하니, 젊은 친구들에겐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직장생활 10년쯤 했습니다. 상사 비위 맞추는 것도 힘들었고, 주어진 업무를 마감까지 해내는 것도 어려웠고, 동료나 후배들과 잘 지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년 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보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10년째 되던 해, 저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내고 말았습니다.


저에게는 연애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흔히 '밀당'이라고 하지요. 여자친구 기분도 좀 맞출 줄 알아야 하고, 백일 이백일 뭐 이런 것도 챙길 줄 알아야 하고, 선물 같은 것도 아기자기하게 챙기고 해야 하는데, 그런 걸 전혀 할 줄 몰랐거든요. 학창시절에 여자친구 몇 사귀어 본 적 있습니다만, 모조리 퇴짜를 맞았습니다. 다들 한결 같은 말을 했지요. "너 같은 인간은 처음 본다!"


사업도 힘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도 '회사 생활 하는 것만큼만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거든요. 착각이었습니다. 사업은 직장생활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1년 365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사업입니다. 철저한 준비, 강철 같은 멘탈, 끈기, 인내, 세상 보는 눈, 시대 흐름, 사람 다루는 기술까지 만능 재주꾼이 되어야만 사업을 잘 키울 수 있는 거였습니다. 


글쓰기도 힘들었고 독서도 힘들었습니다. 재미를 붙이고 쓰고 읽기까지 10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하라면 못할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죽겠다고 각오하고 쓰고 읽었으니 이 정도 된 것이지, 원체 머리가 나쁘고 센스가 없는 인물이라 고생 많이 했습니다. 


돌아보면 무엇 하나 수월하게 해낸 것이 없습니다. 누가 저한테 능력이나 재주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저는 그냥 '밥통'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그 만큼 모든 일이 힘들고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뿐인 아들이 이제 스무 살이 되었는데, 혹여 저처럼 아무 재주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아들이 저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이 한 마디는 꼭 해주고 싶습니다. 

"네가 마주하는 모든 일이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겠지만, 그럴 때마다 '사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버티길 바란다."


그렇습니다. 공부가 아무리 힘들고 군대 훈련이 제 아무리 빡세다 해도 사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인생이 제일 힘들지요. 지금까지 어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아득하기만 합니다. 사람들이 농담삼아 "다시 태어나면"이라고 종종 묻습니다. 그때마다 말을 아낍니다. 솔직히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는 게, 사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사는 게 제일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것은 투정을 부리거나 불평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어떤 일을 하든 사는 것보다는 덜 힘드니 기운을 내 보자는 의미입니다. 저와 함께 하는 많은 이들이 글 쓰는 게 힘들고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 비하면 글 쓰는 건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학창시절에는 공부하는 걸 그토록 힘들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공부만큼 쉬운 것도 없다는 말도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우리는 항상 눈앞에 닥친 상황을 가장 힘들어 하지요. 사실은 이전에 그보다 더 아프고 괴로운 시간도 다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으면서 말이죠. 


힘들고 지친 감정 속에 빠지기 시작하면 모든 게 어렵고 막막하게만 느껴집니다. 그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견뎌가며 여기까지 왔으니 내가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훨씬 힘이 납니다. 살아 있다는 것, 살아냈다는 사실이 우리가 대단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이죠. 


무엇을 써야 하냐고 묻는 이들에게, 저는 늘 강조합니다. 살아온 이야기를 그냥 쓰라고요. 삶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한 감동은 없습니다. 자신이 겪었던 크고 작은 역경을 고스란히 적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버티고 견디고 이겨냈다는 사실을 쓰면 됩니다. 그 글을, 그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작가의 이야기 덕분에 또 살아갈 힘을 내기도 할 테지요. 


제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살아 있는 이야기! 살아낸 이야기! 그거면 충분합니다. 사람이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 하면, '나만 힘들고 괴롭다'고 느낄 때입니다. 사람이 가장 힘을 얻는 때가 언제냐 하면, '나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구나'라고 느낄 때입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누군가에게 힘과 용기가 됩니다.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쓰는 삶의 가치입니다.


글을 쓰는 동안, 내가 제법 잘 살아냈다는 사실에 감동 받고 치유 됩니다. 내가 쓴 글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글 쓰는 것만큼 값진 일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사는 게 제일 힘듭니다. 그 힘든 일을 우리는 오늘도 잘 해내고 있지요.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그런 자신을 안아줄 수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겠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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