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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09. 2023

글쓰기 고민은 글 쓰면 사라진다

두렵다면, 그 일을 하라


무엇을 써야 할까?

어떻게 써야 할까?

분량은 어떻게 채울까?

마무리는 어떻게 할까?

메시지는 어떤 식으로 전할까?


글 쓰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고민을, 아니 이 외에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될 겁니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쓰는 삶을 이어가는 동안 계속 궁리하고 탐구하게 될 테지요. 때로 이런 고민들은 스트레스로 변하여 자신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한계에 다다르면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지요. 


지난 8년 동안 전국 수많은 이들과 쓰는 삶을 함께 했으며, 지금도 같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위와 같은 고민을 매번 하고 있고요. 오죽하면 '백지의 공포'라는 말이 전세계 공통어가 되었겠습니까.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세상 모든 작가가 똑같은 고민을 하면서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뭔가 방법이 있거나 극복할 수 있는 요령이 존재한다는 증명일 테지요. 


농구선수도 많은 고민을 할 겁니다. 이겨야 한다는 강박, 실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부담감, 녹초가 될 때까지 이어지는 강도 높은 훈련, 같은 팀 선수들과 호흡을 잘 맞춰야 한다는 책임감...... 글 쓰는 사람 못지않게 매 순간 강한 압박과 스트레스로 힘들어 할 것이 뻔합니다. 


그런데요. 시합중일 때는 어떨까요? 코트에서 땀을 비오듯 흘리며 열심히 경기하고 있을 때에도 위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적어도 그들이 농구 경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일 겁니다. 작전타임이 아니고서야 어떤 선수가 경기중에 머리로 생각이란 걸 하겠습니까. 순간적인 판단 정도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거의 직관이라 봐야겠지요. 


글 쓰기 관련 모든 고민은 글을 쓰는 순간 사라집니다. 농구 선수가 안고 있는 모든 부담과 스트레스는 경기중에는 사라집니다. 그것이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세상 모든 일이 마찬가지입니다. '그 일'을 하는 순간, '그 일에 관한 고민'을 멈출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학생들이 성적 걱정을 언제 많이 하는 줄 아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고 있을 때입니다. 공부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공부만 합니다.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쉬는 시간,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게임하고 있을 때 등등 공부를 하지 않고 있는 동안 성적 걱정 제일 많이 합니다. 


여러분은 걱정을 언제 합니까? 저는 글도 쓰지 않고 책도 읽지 않고 강의도 하지 않을 때 걱정합니다. 뭐라도 하고 있을 땐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만약 강의 중에 어떤 걱정을 한다면, 아마 그 강의는 엉망이 될 게 뻔합니다. 


글쓰기도 똑같습니다. 쓰지 않을 때 걱정합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걱정보다는 쓰는 행위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글쓰기에 대한 압박이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일단 쓰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글을 잘 못 쓰는데, 일단 시작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잘 쓰겠다는 욕심과 강박을 내던져야 합니다. 지금은 '썩 괜찮은 작품'을 쓸 때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나의 생각과 관점'을 쏟아내야 할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초고입니다. 지금은 초고 집필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위키백과사전에서 '초고'라는 단어의 뜻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풀이됩니다. '초벌로 쓴 원고'


고깃집에 가면 초벌구이 해주는 경우 있지요? 어떤가요? 초벌구이로 나온 고기를 그냥 바로 먹습니까? 그런 사람 없습니다. 다시 불 위에 얹어서 제대로 바싹 구워야 비로소 먹을 수 있습니다. 아직 덜 익은 고기를 입에 넣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고는 바로 먹을 수 없습니다. 다시 제대로 구워야 합니다. 아직 핏물도 그래도 머금고 있는 생고기를 먹을 수는 없지요. 위 아래 뒤집어가며 집게로 꾹꾹 눌러 완전히 익힌 다음, 그런 다음에야 세상에 내놓을 만한 글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저기 주방에서는 어떤 식으로 초벌구이를 할까요? 주방장이 온힘을 다해 '열심히' 구울까요? 아니면, 대충 뒤집으며 어느 정도만 익으면 덜어낼까요? 당연한 얘기지요. 초벌구이에 혼신을 다하는 주방장은 없습니다. 


그들이 프로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요? 결코 아니지요. 손님들이 다시 제대로 익을 때까지 구울 거란 사실을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냉기가 가시고 조금 익힐 정도까지만 굽고 나면, 이후에 '다시 제대로 굽는' 과정이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초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구워야 합니다. 제대로 구워야 합니다. 자르고 뒤집으며 타지 않게. 정성껏 다시 구워야 먹을 수 있는 '상품'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초고를 쓸 때는 마음이 가벼워야 합니다. 근심 걱정 없이도 얼마든지 완성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완전히 구우려고 하니까 어렵고 힘든 것이지요. 


자, 이제 초고는 가볍게 써도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았을 겁니다. 글쓰기에 관한 고민이나 걱정이 크다면,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손 가는 대로 한 번 써 보시길 바랍니다. 쓰기 시작하면 쓰는 행위에만 몰입해서 다른 잡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못 쓰면 어떻습니까. 초고인데요. 횡설수설이면 어떤가요. 초벌구이인데요.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모든 위대한 작품은 '초고'를 거쳤습니다. 그 어떤 작가도 자신의 초고를 세상에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엉망일 테니까 당연한 얘기지요. 우리가 책으로 읽는 그들의 글은, 이미 충분히 정제 되고 다듬어진 최종 상품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적인 거장들도 엉망진창 초고 쓴 다음에 퇴고 거쳐 작품 만드는데, 초보작가인 우리가 무슨 재주로 처음부터 끝내주는 작품을 쓴단 말입니까. 욕심 비우고 부담 내려놓고 강박도 접고, 그냥 생각 나는 대로 마구 써도 됩니다. 좀 신나게 써야 글 쓸 맛도 나지 않겠습니까. 


초고부터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는 경향이 큽니다. 독자를 위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하는 고민보다, 어떻게 하면 지적 받지 않고 무난하게 잘 넘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지요.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쓰면, 매 순간 글쓰기가 '노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독자의 평가도 중요합니다. 글을 쓴다는 건 독자를 위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도 생산자의 철학이나 가치관 없이 그저 소비자의 눈치만 보면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위한다'는 마음과 '비위를 맞춘다'는 개념은 전혀 다른 것이지요. 


초보작가가 글을 쓸 때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용기를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 인정하고 칭찬할 만합니다. 세상 어떤 작가도 타인을 비방하거나 사회를 욕하기 위해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부족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책을 내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쓰지 않는 사람은 고민합니다. 쓰는 사람은 쓰는 행위에만 집중합니다. 혹시, 글을 쓰기가 두렵고 어려워 망설이고 있는 분 계신다면, 지금 바로 세 줄 메모라도 해 보시길 권합니다. 쓰는 동안에는 걱정과 근심이 사라집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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