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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11. 2023

우리는 항상 다른 때와 장소를 갈구한다

지금, 여기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일자리를 구하려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습니다. 당장 일할 기회를 준다고 하면 넙죽 절이라도 할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있고 생계를 유지할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절박한 문제입니다. 기회 자체를 갖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지극히 만족하며 감사한다는 말을 듣기가 힘듭니다. 다들 나름의 불편과 불만과 불평을 쏟아냅니다. 마치 언제든 회사를 때려치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사는 듯합니다. 상사와 갈등, 동료나 부하직원과 마찰, 과도한 업무, 쥐꼬리만한 월급, 시간과 공간의 구속 등 "못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회사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매일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집에 가고 싶어 하지요. 그러다 주말이 되면, 편안히 쉬고 싶은데 또 다른 할 일이 있습니다. 가족 챙겨야 하고 나들이도 가야 하고 아이들도 돌보아야 합니다. 토요일 저녁쯤 되면 회사 가고 싶다 하지요.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싶다 하고, 어른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돈 없으면 부자 되고 싶다 하고, 졸부들은 없던 시절이 행복했었다 말합니다. 연애할 땐 결혼하고 싶다 하고, 결혼 후에는 내가 미쳤지 후회합니다. 배가 나오면 운동해야겠다 하고, 운동할 땐 쉬고 싶다 말합니다. 집에 있으면 나가고 싶다 하고, 밖에 나가면 집이 최고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면서, 우리는 항상 다른 때와 다른 곳을 갈망합니다. 다른 때와 다른 곳에 존재하게 되면, 또 다른 때와 다른 곳을 바랍니다. 이런 마음과 태도는 성장도 아니고 확장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닙니다. 욕심이고 습관이며 현재를 놓치고 사는 불행한 삶의 원인일 뿐입니다.


자신이 다니던 직장과 상사가 형편 없다며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던 이가 있었습니다. 결국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겼지요. 그 곳에서는 어땠을까요? 네, 맞습니다. 똑같은 이유로 그만두었습니다. 그 사람은 어느 누구와도 잘 지내지 못했던 것이지요. 친구도 없고 소속된 모임도 없습니다. 외부 환경이나 조건이나 타인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문제였던 것이죠.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못하는 이유를 시간 개념으로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입니다. 과거 상처와 아픔 또는 영광에 파묻혀 지금을 놓치며 살아가는 사람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대책 없는 낙관으로 현재를 잃고 사는 사람들. 저 또한 과거와 미래만 생각하며 사느라 오늘에 집중하지 못한 탓에 인생을 몽땅 잃었던 적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인간이 만들어낸 시간 관념일 뿐이지요.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그 관념 속에 빠져 정작 살아내야 할 오늘과 지금에 소홀하고 있습니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누군가로부터 속상한 말을 한 마디 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말을 들은 시점은 이미 과거인데, 우리는 속상하다는 이유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오류를 범합니다.


다음 주에 중요한 시험이 있다고 칩시다. 오늘 해야 할 일은 공부입니다.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들이 시험을 걱정하느라 공부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이 과거와 미래에 매달려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사례입니다. 


내면이 바뀌지 않으면 좋은 때를 만나도 오래 유지하지 못합니다. 내 안이 변화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여전히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지요. 지금이 좋으면 아무 때나 좋습니다. 여기가 행복하면 어느 곳에 가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언제 어느 곳엘 가도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모든 걸 좋아하고 모든 때에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싫은 감정'에만 빠져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얘기지요. "지금, 여기"가 불행하기 때문에 또 다른 시점 또 다른 장소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때와 장소를 만날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도 충분히 좋지만, 더 나은 때와 장소를 꿈꾸며 살아가는 태도가 마땅한 것이지요. 그래야만 인간 본연의 속성인 '확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가족 얘기를 좀 해 볼까요.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아들 이렇게 다섯 식구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분 모두 여든 넘었습니다. 나름의 고집과 방식이 있겠지요. 아내와 저는 사사건건 두 분과 마찰을 빚습니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지요. 불과 10년 전에, 제가 감옥에 가고 집안이 풍지박산 난 적 있습니다. 그 시절 생각하면 지금 모든 게 그저 축복이고 기적이며 행복일 뿐인데도, 가족은 맨날 툭탁거리며 인상을 쓰고 삽니다.


만족은 무엇이며 행복은 또 어떤 걸까요? 그것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오롯이 집중하는 거겠지요. 더 나쁜 시간보다는 지금이 좋습니다. 더 싫은 곳보다는 여기가 낫고요. 더 힘든 사람들보다는 이만하니 다행이고, 더 고통스러운 삶보다는 이쯤 되었으니 행복한 겁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과 나보다 나은 인생만 바라보고 사니까 매 순간 불행할 수밖에요.  어떤 순간이든 나보다 힘들고 못한 사람 있게 마련이고, 또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을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내가 하는 불평과 불만은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겠지요. 


사람마다 각자의 고민과 문제로 씨름하며 사는 거겠지만, 적어도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적임은 분명합니다. 이런 생각을 품고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가장 평온하고 이로운 것은 내 마음이거든요. 내가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는데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생각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 축복을 누릴 수 있다면, 기꺼이 시도해 볼 만하겠지요.


지금도 괜찮습니다. 조금 더 나아질 겁니다. 여기도 충분히 좋습니다. 조금 더 좋아질 겁니다. 지금에 집중하고 여기에 감사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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