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장이 Nov 17. 2023

더 이상 쥐어짜며 쓸 필요 없습니다

글 쓰는 방법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생각, 느낌, 감정, 경험, 지식 따위를 문자로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내 안에 있는'이라는 말이 중요하지요. 없는 걸 새로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걸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머리와 가슴과 손은 글을 쓰는 도구일 뿐입니다. 통로인 셈이죠. 도구 또는 통로를 글 쓰는 주체라고 오해하면, 없는 걸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됩니다. '창조한다'고 생각하면 어렵고 힘들지만, '받아적는다'라고 생각하면 훨씬 수월하게 느껴집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걸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자기만의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초보 작가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은 내 안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받아적기가 어려운 이유와 문제를 해결하여 술술 쓸 수 있는 요령에 대해 정리해 봅니다. 


첫째, 자신의 기분과 감정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을 팽개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종일 관심조차 갖지 않다가 글을 쓸 때에만 '생각하려고' 하니까 자꾸만 쥐어짜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 내 기분이 어떠한지,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수시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메모해야 합니다. 지나칠 정도로 머리를 믿는 습성이 있지요. 누군가는 우리 모두가 천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꾸준히 두뇌를 사용했을 때 얘기고요. 평소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푹 빠져 주입식 사고에만 익숙한 상태에서는 절대로 머리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손을 믿어야 합니다. 수시로 메모하고, 메모한 걸 들여다보면서 사고력을 키워야 합니다.


셋째, 촉을 세워야 합니다. 자기만의 콘텐츠 영역을 정하고, 매일 안테나를 세워 보고 듣고 겪는 모든 일들을 걸러내는 것이죠. 바다 앞에 가만히 서서 물고기 잡겠다고 생각만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물을 만들어 던져 놓아야 고기를 낚을 수 있겠지요. 어떤 글을 쓸 것이라고 딱 정해놓고 하루를 보내면, 글감과 내용은 무조건 걸리게 마련입니다. 


넷째, 잘 쓰려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얘기는 지난 8년 동안 틈만 나면 강조하고 있는데요. 여전히 많은 초보 작가가 초고를 쓸 때부터 잘 쓰려고 하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욕심이란 것이 이토록 사람을 휘어잡는 끈질긴 마음이란 사실에 새삼 놀랍니다. 글은 편안한 마음으로 써야 더 잘 써집니다. 독자들도 작가가 행복한 마음으로 쓴 글을 더 좋아할 테지요. 


다섯째, 고요하고 느긋해야 합니다. 많은 초보 작가들이 글을 쓰는 행위보다 끝내는 데 초점 맞춥니다. 엉덩이를 의자에 눌러 끝까지 한 줄 한 줄 정성껏 써야 하는데, 자꾸만 "빨리 다 쓰고 나서 다른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처럼 급합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생각이나 감정 또는 기분을 받아적기 위해서는 스스로 시간을 허락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자는 게 아닙니다. 이미 다 일어났고 경험했고 느낀 이야기를 '전하자'는 것이지요. 공부하고 익혀야 할 것은 전달력과 표현력일 뿐, 문장을 억지로 지어내는 기술이 아닙니다. 평소에 한 번도 쓰지 않는 단어가 글 속에 수북하게 녹아 있는 이유도 글을 글처럼 쓰려는 속성 때문입니다. 


수능 시험을 다 치르고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학생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시원한 냉수 한 잔 마시고 싶을 테고, 아무 생각 없이 종일 푹 자고 싶기도 할 겁니다. 그냥 이렇게 쓰면 됩니다. 냉수 한 잔 마시고 푹 자고 싶다고 말이죠.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글을 쥐어자며 쓰려고 합니다. "인생의 커다란 시험대를 처음으로 경험하고 나니 마치 내가 한층 더 성숙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세상이 온통 핑크빛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자신이 가진 건 30 정도인데, 남들한테 잘 보이기 위한 마음은 70이 넘습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있지도 않은 온갖 감정을 허위로 만들고, 공부도 빡세게 하지 않았으면서 시험대라는 말을 함부로 쓰고, 실제로 그렇게 보이지도 않았으면서 핑크빛이라는 허영을 남발하는 것이죠. 


초등학생이 얼굴에 화장을 떡칠한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아름답고 멋져 보이는가요? 전혀 아니겠지요. 어색하고 보기 싫고 흉물스럽기까지 합니다. 재활용 헝겊 쪼가리를 얼굴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초등학생은 초등학생다울 때 가장 아름답고 멋진 것이죠.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정성 담은 글이 최고입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생각이나 느낌, 경험과 감정 따위를 받아적으라고 하니까 또 다른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한 편의 글이 맥락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죠. 마구 받아적고 나니까 두서가 없고 핵심 주제로 희미하여 그저 나열하는 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또한 요령이 없어서 그런 건데요. 아래와 같이 연습해 보시길 바랍니다. 


첫째, 일단 쏟아냅니다. 이 작업이 가장 우선입니다.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아야 분류를 하든 정리를 하든 할 게 아니겠습니까. 


둘째, 쏟아낸 내용 중에서 키워드 세 개를 고릅니다. 내용을 고르려 하지 말고, 단어를 골라야 합니다. 단어는 집중과 몰입을 가능케 해줍니다. 


셋째, 자신이 고른 세 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주제문을 만들어 봅니다. 예를 들어, 가을과 수능과 불안이라는 단어를 골랐다고 칩시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순간은 시작이 될 수 있다. 가을은 계절의 시작이고 수능은 공부의 시작이다. 불안해 할 게 아니라 설레는 순간이다." 단어 세 개를 문장으로 조합하는 연습만 해도 핵심주제문 정하는 충분한 연습이 됩니다.


넷째, 주제문 정하고 나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세 가지 사례와 경험담을 씁니다. 삼발이 경험이라 하지요. 세 가지 이야기로 뒷받침하면 주제문이 훨씬 견고해집니다. 


다섯째, 다 쓰고 나면 독자 입장에서 한 번 읽어 봅니다. 주제와 관련 없는 내용은 과감히 삭제하고, 어려운 문장이나 중복한 내용들 정리하고 정돈합니다. 


글 쓰는 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글 쓰는 걸 힘들고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요. 지난 10년간 매일 글 쓰고 책 읽으며 공부했고요. 지난 8년간 581호 작가를 배출했습니다. 글 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나 힘들고 어렵다는 부분들, 누구나 다 겪는 일입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만으로도 오늘 글을 쓸 용기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작가의 이전글 마음에 작은 공간 하나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