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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17. 2023

글쓰기, 5분만 보여주면 충분하다

인류에 대해 쓰지 말고 인간에 대해 쓸 것


"운동을 했더니 건강해졌다."라고 쓰는 문장은 전형적인 설명문입니다. 독자는 이 문장을 읽고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건강을 잃고 힘들었던 일상 이야기, 어떤 계기로 운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운동을 하고 나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 글을 이런 식으로 써야 독자 마음에 닿을 수 있습니다.


"매일 10분씩, 3개월 동안 줄넘기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얼굴도 흙빛이었고 잡티도 많았는데, 매일 운동하며 땀을 흘리고 나니 화색이 돈다. 화장실에서 볼일 한 번 보는 것도 일이었는데, 요즘은 하루 두 번 시원하게 속을 비우니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하다."


운동을 한 후로 변화한 자신의 일상을 독자들에게 그대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딱 5분 정도만 일상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만 해도 독자는 "운동해서 변화했구나"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얼굴빛도 환해지고 속도 잘 비울 수 있다는 내용을 읽은 독자 중에는 아마 줄넘기를 시작하는 이도 많을 테지요. 


목요일 밤 9시부터 한 시간 동안 123명 예비 작가님들과 제 167회 "이은대 문장수업" 함께 했습니다. 오늘은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내용을 예시와 함께 강조했습니다. 그림은 읽을 수 있어야 하고, 글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 글을 읽는 독자가 그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글의 가치와 의미가 가득해지는 것이겠지요.


"글을 쓰면 치유가 됩니다."라는 문장을 읽고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요? 반면, 아래 문장은 어떤지 한 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갑자기 가슴 통증을 호소하셨다. 심장 혈관 수술을 한 지 일 년 지났다. 급한 마음으로 병원에 연락했다. 검사할 시기도 되었으니 한 번 나오라고 했다. 이틀 뒤, 아침 일찍 영남대 병원으로 가서 당일입원을 하고 검사를 진행했다. 이상 없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검사 결과에 관한 담당 의사의 구체적인 설명은 일주일 뒤에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여전히 불안한 마음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나하나 글로 적다 보니 마음이 안정된다. 걱정이나 근심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것보다, 이렇게 종이에 적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써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던 전과자 파산자의 절망적인 삶을 이어가던 시절에도 나는 매일 글을 썼다. 덕분에 가슴 속 상처는 아물었고, 풍요롭고 평온한 삶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떤가요? 아버지와 병원,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잠시 보여주는 것만으로 '치유'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으면서도 치유를 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글을 쓸 때 구체적으로 보여주기보다 설명문을 많이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쉽기 때문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다양한 이야기를 하나씩 세부적으로 쓰는 것보다는, "힘들었다, 아팠다, 좋았다, 기뻤다"라고 퉁치는 것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점이 있지요. 작가가 쉬우면 독자는 어렵습니다. 작가가 힘들고 어려우면 독자가 수월해집니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고난을 선택하고 극복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작가의 존재 이유는 독자이기 때문이며, 독자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글이라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행복하다"는 문장은, 인류를 위한 성인들의 표현입니다. 오늘 연인과 함께 무슨 영화를 보았고 점심은 무엇을 먹었으며 얼마나 자주 많이 웃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글은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표현입니다. 인류에 대해 쓰지 말고 인간에 대해 쓰라는 미국 수필가 EB화이트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지요.


구체적으로 쓰겠다 작정하고 하루를 살면, 더 잘 보이고 더 잘 들립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면, 하루는 더 풍성해집니다. 삶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뜻이지요.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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