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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18. 2023

문장 하나, 그것으로 충분하다

문장을 읽고, 문장을 쓴다


'책을 읽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문장을 읽는 것입니다. 저는 감옥에 있을 때부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고 지금도 매일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만, 한 권의 내용을 온전히 기억하는 책은 별로 없습니다. 혹자는 저의 독서 방법에 대해 지적하기도 합니다. 책을 읽었으나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런 독서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이지요.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책 한 권을 통째로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또한, 굳이 그렇게 책 한 권을 달달 외워야 하는 필요는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테니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책 읽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책 한 권의 내용을 싹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제 가슴에는 강렬하게 새겨진 문장들이 있습니다. 머리와 가슴에 다 채우지 못한 문장들은 독서노트에 옮겨놓고 매일 수시로 읽습니다. 삶은 극적으로 변하였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문장'이 있습니다. 강의할 때마다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만, 제가 강조하는 독서는 책보다는 문장을 읽으라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위대한 예술가들과 훌륭한 과학자들이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들은 그 일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힘, 즉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얻는다." - <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40여권의 저작을 남긴 철학자이면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필가이기도 한 버트런드 러셀의 책에서 발견한 문장입니다. 저는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에 담긴 모든 내용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독서노트에 상당한 양의 문장을 옮겨놓았으니 달리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요. 


위에 언급한 바로 저 문장. 저는 이전까지 인상 팍팍 쓰고 소리 꽥꽥 지르며 세상 심각한 표정과 감정으로 글 쓰고 강의했습니다. 저 문장을 읽고 난 후부터는 글을 쓸 때도 강의를 할 때도 심장이 설레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문장 하나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 것이죠. 이러한 이유로 저는,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있을 때 그 안에 내 인생을 바꿀 수많은 문장들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많은 사람이 묻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잘하는 일을 해야 합니까?" 물론,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그나마 낫습니다. 세상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의문조차 갖지 않는 이들도 많으니까요. 사뭇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무엇이 옳은 걸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가도,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문장을 읽고 오랜 시간 고민했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지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한다!"가 정답이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글쓰기는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참고 견디고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이 작가의 태도라고 믿었습니다. 과거 참혹했던 시절 겪었으니, 글 쓰는 정도의 고난은 얼마든지 버텨낼 수 있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내 안에는 상당한 압박과 강박과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있었는데도, 저는 그걸 못 본척 "잘하고 있다!" 가식적인 태도로 살았던 겁니다. 


글 쓰면서 웃습니다. 글 쓰는 걸 좋아합니다. 글 쓰는 걸 좋아하기로 작정한 후부터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 악물고 썼던 글이나 실실 웃으면서 쓴 글은 수준이 비슷했습니다. 웃으면서 쓸 때가 훨씬 행복하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죠. 


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수강생이 많습니다. 온갖 일이 다 일어납니다. 유쾌한 일보다는 문제가 더 많이 생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전에는 참으면서 강의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생겨도 꾹꾹 눌러가며, 수강생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고 강의하는 것이 강사의 태도라고 믿었습니다. 


강의를 하면서도 저 자신은 불행했습니다. 하지만,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인내의 과정을 거치면 좋은 날 올 거라 믿었습니다.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강의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즐겁고 행복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버트런드 러셀의 문장 하나로, 저는 강의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딱 어울리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문장의 힘을 믿습니다. 그 동안 읽은 많은 책의 제목과 저자는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제 가슴에 새겨져 있는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인생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쓸 겁니다. 앞으로도 소중한 문장 많이 찾아 가슴에 새길 겁니다. 문장을 읽고 문장을 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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