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좀 안 체한다 했더니 방심한 차에 또 체하고 말았다. 미세하게 두통이 시작되면서 소화불량이 느껴질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베나치오 마시기. 사람마다 효과가 좋은 소화제가 다르다는데 나는 베나치오가 1등, 베아제가 2등이다. 일단 베나치오를 한 병 마시고 경과를 지켜보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베아제도 한 알 먹는다. 그러고도 소화가 안된다 싶으면 4시간 후에 베나치오 한 병 더. 그 사이에 스트레칭도 하고, 걸어보고, 폼롤러로 등도 열심히 풀어준다. 목, 어깨, 등을 중점적으로 풀어주는 편이다. 보통 소화가 안되면 그 부분이 딱딱하게 뭉쳐있기 때문이다.
나의 소화불량 일대기는 태어나서 내 기억이 존재하는 때부터 시작된다. 어렸을 때부터 주야장천 체했다. 어려서는 소화불량의 기미를 빠르게 알아채지 못해서 소화제 복용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소화불량 정도가 아니라 체함으로 넘어가면 이제 소화제는 소용없다. 토하는 수밖에 없다. 먹고 체하고 토하고. 그럼 조금 먹으면 되지 않느냐! 싶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타고나게 약한 위장과 어울리지 않게 식욕은 좋은 아이였던 것이다. 덕분에 토하는 게 일상이라 굉장히 잘 토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양치질하다가도 토하고 트림하다가도 토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말았다. 별로 어렵지도 않아서 웩웩 잘도 토했다. 그렇게 식도가 점점 상해 갔겠지. 여하튼,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내가 언제 체하는가에 대해 깨닫게 되었는데 바로 추울 때이다. 아, 이 얘기 핫도그 때 하지 않았던가? 추운 날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 100프로 체한다. 먹고 피곤하게 몸을 움직여도 체한다. 기분이 안 좋아도 체한다. 너무 더워도 체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안 체하는 때를 설명하는 게 빠를 것 같기도 하다.
30대에 접어들며 이제 체하는 음식들이 한두 개씩 추가가 되기 시작했는데 주로 단백질이 문제다. 뭉쳐놓은 고기는 최악이다. 순대, 만두, 함박스테이크, 고기완자 같은 건 위험하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순으로 소화가 안되는데 돈가스는 단연 최악이다. 이제 돼지고기는 거의 끊다시피 했다. 계란도 2개 이상은 위험하다. 삶은 계란이 특히 소화가 안 되는 편이다. 견과류, 잡곡 등도 소화가 잘 안 된다. 하여간 다이어트에 좋다는 음식, 포만감이 오래간다는 음식은 다 소화에 안 좋다고 보면 된다.
어제는 왜 또 체했느냐. 그것은 바로 배고프지 않은데 먹었기 때문이다. 그제 저녁에 찜닭을 먹고 아침에 일어나 배가 전혀 안고팠는데 냉장고에 들어있던 닭가슴살 볶음이 신경 쓰였다. 먹어치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만성 소화불량인에게 이건 굉장히 안 좋은 사고방식이다. 뭐든 먹어치워야겠다는 생각은 집어쳐야한다. 내 위장에 버리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제 아침 나의 판단력은 잠이 덜 깨서인지 흐려져있었고 아무 생각 없이 위장에 고기를 또 넣고 만 것이다. 아마도 그제 먹은 찜닭이 아직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또 고기를 넣으니 위도 화가 났겠지. 화가 나면 파업한다.
두통 때문에 낮잠도 좀 자고 누워있다가 일어나니 소화가 좀 된 것 같았다. 굶을까 죽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죽을 먹어야겠다 하고 밥을 했다. 그런데 밥 하는 중에 냉동실에 넣어둔 초코케이크가 생각났다. 내 위장은 맛있는 탄수화물을 넣어주면 일을 한다는 생각이 났다. 이것도 때에 따라 달라서 잘 느껴봐야 된다. 지금 굶어야 하는지 맛있는 걸 넣어줘야 하는지 잘 판단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맛있는 걸 넣어줘야 하는 타이밍인 것 같아서 초코케이크를 조금 먹었다. 아 맛있다. 맛있으니까 위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제 다 나았다! 내일 아침엔 보리차 끓여서 밥 말아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먹으면서 먹는 생각하는 거 최고. 그리고 오늘 아침에 계획한 대로 먹었다. 두통도 없고 속도 편안한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