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싫은 과일이 냉장고 안에 쌓여 있을 땐, 갈아먹으면 과일을 빨리 소진할 수 있다. 분명 먹고 싶어서 샀건만 나의 마음은 왜 이리도 변덕스러워 금세 질려버리기 일쑤인지. 마음 문제보다도 수박같이 큰 과일은 혼자 다 먹기엔 너무 양이 많지 않은가? 수박을 깍둑 썰어 넣어둔 커다란 플라스틱 통이 냉장고에서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냉장고가 가득 차 있는 꼴을 보지 못하는 나는 수박을 처리하기로 했다. 수박을 꺼내 과도로 씨를 하나하나 발라내고 잘게 조각내어 분쇄기 통에 넣고 있자니 스스로를 먹이기 위해 참 부단히도 움직이는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스스로가 새끼 새도 되고 어미 새도 되는 양 움직인다.
비닐봉지에 들어있던 포도가 시들해져 가는 것 같아서 포도도 갈아버리기로 했다. 본래 껍질째로 먹는 포도이지만 갈아먹기에는 껍질이 질깃 거리니 껍질을 알알이 벗겨냈다. 껍질째로 먹는 포도는 과육과 껍질이 밀착해있어서 깎아내듯이 껍질을 벗겨내야 한다. 씨앗이 없는 포도라 껍질만 벗겨내어 과육을 모아두었다. 연두색 포도알들을 갈았더니 모양새가 볼품없다. 마치 슈렉이 살고 있는 늪지대 같다. 예쁜 보랏빛은 껍질의 색깔이니까 껍질을 갈지 않으면 포도주스는 연두색이다. 연둣빛 액체를 보며 탄산수와 섞어먹을까 얼음만 넣어 먹을까 잠시 생각하다 냉장고에 넣었다.
수박도 포도도 갈고 나면 부피가 확연히 줄어든다. 서로를 밀고 있던 단단한 벽이 사라지니까. 세로로 긴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 문짝에 놓으니 냉장고 공간도 덜 차지해서 만족스러웠다. 이제 언제든 시원한 주스가 마시고 싶으면 꺼내 마실 수 있다.
2020년 5월 25일
블로그에 있던 글을 브런치로 옮기고 있는 와중에, 기침이 조금 나오길래 냉장고에서 주스를 하나 꺼내왔다. 이건 내가 갈아놓은 주스는 아니고 코스트코에서 산 카프리썬 멀티비타민 주스다. 비타민이 6가지나 들었고, 칼로리도 200ml에 60kcal로 적당하다고 생각해서 잘 먹고 있다. 처음 마셨을 때는 약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거북하기도 했는데 마시다보니 건강해지는 느낌이고 어쩐지 맛에 중독되어서 떨어지지 않게 대용량으로 사놓고 있다. 이것도 과일주스니까 한 번 소개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