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을 아드득 까드득 씹어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입안에서 사탕처럼 돌돌 굴려 먹기도 한다. 아무 맛이 안 나는 깨끗함. 다 먹고 나서도 입안에 어떤 찝찌름한 맛이나 씁쓸함, 끈적거림 또는 산미가 남지 않아 좋다. 살이 찔 염려도, 나트륨 섭취량을 넘길 일도, 당 수치가 올라갈 일도 없다. 이 얼마나 무해한 간식거리인가. 단단한 얼음을 씹어먹다가 이가 상한다거나 체온이 내려가 면역력이 약해진다거나 하는 염려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이 정도는 넘어가자. 얼음의 깨끗하고 시원한 맛이 주는 쾌감이 더 크니까.
뭐든 싱겁게 먹는 걸 좋아해서 갖가지 음료에 얼음을 넣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스커피도 연하게 얼음을 가득 넣어 마시고, 단 주스에도 얼음을 잔뜩 넣어 단맛을 약하게 만들어 마신다. 탄산 역시 강한 걸 안 좋아해서 탄산음료에도 얼음을 잔뜩 넣은 후 입으로 탄산을 후후 불어 날려버리고 나서 마시곤 한다. 가끔 뜨겁고 짠 찌개에도 얼음 몇 개를 넣어 먹는다. 얼음을 조금 넣으면 짠맛도 약해지고 뜨거운 열기도 금세 식는다. 식당에서는 냉수를 조금 타 먹으면 좋다. 자극적인 맛에 익숙한 사람들이 보면 경악할 수도 있겠다. 누군가의 입맛에는 이도 저도 아닌 맛이 되어버리니까.
내가 나고 자란 가족은 전 구성원이 입맛이 무디다. 한 달 내내 같은 메뉴를 먹어도 아무도 군소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찌개보다는 슴슴한 국을 선호해서 시래기를 넣은 묽은 된장국이나 멸치와 김치만 넣고 끓인 싱거운 김칫국을 몇 날 며칠 먹고는 했다. 어려서부터 배달음식과 외식이 일절 없다시피 한 가정에서 자라다 보니 입맛이 덜 자극적인가 싶기도 하다. 티비에 먹방 유튜브를 켜놓고 작업을 할 때가 많은데, 먹방 유튜버를 따라 시킨 배달음식들은 대부분 내 입맛엔 맞지 않았다. 너무 짜거나, 달거나, 느끼하거나, 매웠다. 나에겐 다 너무 자극적인 맛이었다. 몇 번의 실패 이후로는 먹방 유튜버들이 먹는 음식을 봐도 저건 내 입맛에 안 맞겠거니 한다. 그래도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 걸 보는 게 재밌어서 여전히 자주 본다.
지금도 얼음을 씹어먹으며 글을 쓰고 있다. 유리컵에 얼음만 가득 담아 하나 두 개씩 입안에 넣고 굴리다가 아그작아그작 씹어먹다가 한다. 얼음은 사계절 내내 먹는 편인데 이제 여름이 다가오니 우리 집 얼음정수기가 더 바빠질 때다. 가끔 덜그럭덜그럭 얼음을 쏟아내는 소리가 들리면 그게 그렇게 귀엽다. 이번 여름에도 열심히 일해주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