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진 엽편소설
https://youtu.be/9SzOpfjJdFo?si=MAQbfXhjfz54aaUL
쫑아!
주인이 상냥한 어투로 부르자 쫑이는 쪼르르 달려가 아양을 부렸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쳐다보자 주인이 아고, 예쁘다! 하며 머릴 쓰다듬어 주었다.
쫑이는 아직 이 집이 낯설다. 자신이 살았던 고층건물의 뒷골목 춥고 으슥한 곳에서 나와 예쁜 집까지 생긴 이곳에서, 얼마 전부터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 주인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전에도 자신을 예뻐했던 다른 주인이 있었지만 이유도 모른 채 길거리에 버려졌었다.
태어난 지 일 년이 채 안 되었을 때였다. 주인은 이십 대 후반의 긴 머리에 날씬하고 아름다운 외모의 아가씨였다. 그녀는 쫑이를 아주 예뻐했다. 맛있는 음식을 챙겨주고 때로는 산책도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어떤 날은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 친구가 집으로 찾아오곤 했는데, 하루 종일 붙어 앉아 스킨십을 하며 잠시도 떨어질 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남자 친구가 집에 오지 않았다. 주인도 퇴근시간이 번번이 늦어져 쫑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션, 그가 나를 배신했어, 이제 나는 어떡하지….”
주인은 울면서 션이라 부르며, 쫑이를 힘껏 끌어안았다. 쫑이는 그녀가 너무 힘껏 끌어안는 바람에 작은 몸이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든 사이 쫑이는 허허벌판에 버려졌다.
쫑이는 평소의 기억을 더듬어 주인과 같이 산책하던 놀이터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원룸 건물에 주인이 살고 있었다. 쫑이는 원룸 건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을 한결같이 예뻐해 주던 주인이 왜 버렸는지, 어떤 상황에 처한 건지, 그날 밤 자신을 끌어안고 울던 모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쫑이는 발길을 돌렸다. 원룸에서 차츰 멀어져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때 덩치 큰 진돗개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너도 버림받았냐? 보아하니 그런 것 같네, 쯧쯧,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진 마라, 나쁜 사람들한테 잡혀갈지 모르니까.”
덩치 큰 진돗개는 그렇게 말하고 순식간에 건물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배가 고팠다. 쫑이는 음식 냄새가 나는 식당 쪽으로 걸어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어떤 여자아이가 나타나 소시지 두 개를 놓고 갔다. 쫑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소시지 두 개를 먹어치웠다.
허기가 가시자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건물 으슥한 곳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늦가을바람이 냉랭하게 몸을 감쌌다. 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래도 자신을 버린 주인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분명 말 못 할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자신을 끔찍이 사랑해 준 것만도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스스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신을 돌봐야 한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몰티즈 종인 자신은 몸이 작아서 최소한의 음식으로도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덩치 큰 진돗개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나쁜 사람들한테 잡혀갈지도 모르니까.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밖을 내다보니 사고가 난 모양이다. 앰뷸런스가 와 있고 경찰차도 와 있다. 사고가 난 곳에 하얗게 칠을 하고 한참 후 차들이 사라졌다. 쫑이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식당 옆에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어제 본 그 여자아이가 나타나더니 물과 소시지 두 개를 주었다. 그리고 예쁘다며 흰 털로 뒤덮인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참을 놀아준 여자아이는 학교에 가야 한다며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
쫑이는 자신이 버려졌던 허허벌판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주인이 찾아올까 봐 기대를 하며 그곳을 배회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따사로운 햇살만이 쫑이를 따라다녔다. 쫑이는 하루 종일 햇살과 장난을 치며 그곳에 머물렀다. 햇살이 기진맥진하여 서쪽 언덕을 넘어가면 쫑이도 그곳을 벗어나 건물의 으슥한 곳으로 되돌아왔다. 내일도 모래도 또 갈 것이다. 쫑이는 피곤이 몰려와 단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주인이 자신을 가방에 메고 놀이터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쫑이는 주인과 눈을 마주치며 연신 애교를 부렸다.
아침부터 누가 구슬프게 울고 있다. 쫑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일어나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어제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와 있던 길가에 어떤 귀부인처럼 생긴 아주머니가 주저앉아 슬프게 울고 있었다. 쫑이는 멀리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주머니는
“쫑아, 쫑아, 어디 있니?”
하며 계속 울었다. 그 모습을 보니 쫑이도 괜히 눈물이 나려고 했다.
얼마 후 경찰차 한 대가 나타났다. 차에서 내린 경찰관은 울고 있는 아주머니한테로 가더니 뭐라고 달래듯 얘기를 하였다. 한참 후 아주머니가 눈물을 닦더니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다. 쫑이도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경찰관과 눈이 마주치면 큰일인 것이다. 다시 건물의 으슥한 곳으로 되돌아와 웅크린 채 저만치 큰 길가를 내다보았다. 아주머니의 슬피 우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쫑이는 대체 누구일까?’
살포시 잠이 들었던 쫑이는 일어나 식당 쪽으로 갔다. 여자아이는 없고 소시지 두 개가 식당 옆 모퉁이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쫑이는 감사함을 느끼며 소시지를 다 먹고 자신이 버려졌던 허허벌판으로 향했다.
푸른 가을 하늘이 눈이 시리게 예뻤다. 쫑이를 많이 예뻐해 주던 주인을 닮아 보였다. 쫑이는 하늘을 향해 껑충 뛰어올랐다. 기분이 좋았다. 빙글빙글 돌아도 보았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쫑이는 한참 동안 껑충껑충 뛰었다가, 빙글빙글 돌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저 멀리서 다가왔다. 어떤 남자와 여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션! 션!”
하고 불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다. 쳐다보니 그토록 찾아 헤매던 주인이었다. 그 옆엔 예전의 그 남자 친구도 같이 있었다. 주인은
“션! 몰골이 이게 뭐니?”“엄마가 미안해.”
하고 말하며 승용차에 태웠다.
목욕을 마치고선 얼마나 늘어지게 잤는지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집안은 몹시 어두웠다. 예전처럼 주인과 남자는 꼭 끌어안고 잠이 들어 있었다. 헤어졌는가 싶었는데 다시 만나는 모양이었다. 주인은 무척 행복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집안이 몹시 덥게 느껴졌다. 예전엔 조금씩 열려있던 창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현관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려고 애써 봐도 열리지 않는다. 그때 인기척이 나더니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 문을 열어 주었다.
“산책할래?”
남자가 문을 열어주더니 션을 안고 원룸 입구에 내려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발로 배를 힘껏 걷어찼다.
“깨개갱!”
“난 네가 끔찍하게 싫다, 다시는 오지 마라.”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나직이 말하더니 다시 한번 발로 머리를 세게 걷어찼다. 션은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프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힘을 내 차도를 가로질러 마구 달렸다. 두 눈에선 눈물과 함께 피가 흘러내렸다. 주인이 왜 자신을 버렸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남자는 몹시 깔끔한 성격으로 개털 알레르기가 심했다. 원룸에 올 때마다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션을 노려보았다. 물론 션도 자기를 미워하는 남자가 극도로 싫었다. 남자만 보면 션도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마구 짖어댔다.
싸움의 발단은 언제나 션 때문이었다. 션만 없어져버리면 둘은 행복하게 잘 살 것 같았다. 션은 주인이 자신을 얼마나 예뻐해 줬는지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몹시 마음이 아팠지만 자신이 떠나야 주인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물과 피가 범벅이 되어 계속 흘렀다. 시야가 뿌옇게 보여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간신히 자신이 있던 건물의 으슥한 곳으로 되돌아왔다. 이젠 이 으슥한 곳이 더 익숙하고 마음이 편했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안정감과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밤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쫑이는 남자한테 걷어 차인 곳이 너무 아파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작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끙끙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불렀다.
“쫑아, 어딨 니?”
밖을 내다보니 귀부인처럼 생긴 아주머니가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타나 울면서 또 쫑이를 불렀다. 쫑이는 자신도 모르게 아주머니가 있는 곳으로 비틀거리며 가까이 다가가 “낑낑”(울지 마세요) 거렸다. 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려 깜짝 놀라더니 쫑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쫑아! 내 아가, 쫑아! 여깄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