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시인
시 ‘압천’과 ‘서시’에 대하여
강희근(시인,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시 〈압천〉은 정지용(1930년대 우리나라 최고시인)이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 다닐 때 쓴 시 〈압천〉을 말하고 〈서시〉는 윤동주가 연희전문을 나올 무렵 쓴 〈서시〉를 말한다. 정지용의 〈압천〉은 교토 도시샤대학 앞을 흐르는 개울이 있었는데 그 개울 이름이다.
일단 시 전문을 읽어 보자.
교토의 도시샤대학 캠퍼스
나라 잃은 두 사나이의 시비가 서 있다
아시는가
압천 십리벌에 해는 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물 소리
지금은 잔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들으시는가
잎새에 이는 바람
별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지금은 캠퍼스 교양관 창으로 찔리듯
들어오는 햇살에 씻기여
잔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붉은 벽돌 아담한
캠퍼스의 늙은 팽나무
그늘이 그늘을 물고 있다
두 사나이의 눈썹이 눈썹을 보고 있다.
-「압천과 서시」 전문
이 시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정지용이 도시샤대학을 다니고 15년쯤 후 윤동주가 1943년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다니는데 이 인연으로 도시샤대학 구내 화단에 정지용의 시 〈압천〉과 윤동주의 시 〈서시〉가 50미터 간격으로 서 있어 이목을 끈다. 그런데 윤동주는 정지용의 동시를 좋아하고 일부 그 정서를 닮아 있기도 하다.
그런데 필자의 이 시는 정지용 시에서 일부, 윤동주의 시에서 일부를 패로디로 옮겨 쓰고 있다.“ 압천 십리벌에 해는 저물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지용) “잎새에 이는 바람/별이 바람에 스치는”(동주)이 그것이다.
도시샤대 화단에 나라 잃은 사나이 시비 둘이 서 있다는 것이 이채롭다. 그 두 시인의 “소리”가 지금은 잔잔히 잘 들리지 않는다고 겨레의 아픔이 진정되는 정서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윤동주의 경우 아버지가 의과대학을 원했지만 끝내 그는 시를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 교토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 왜놈들 인체 실험에 희생되어 죽어간 아들의 유골을 북간도로 싸들고 간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무덤을 만들고 죽어서 돌아온 아들의 묘에 <시인 윤동주지묘>라 새겨 주었다. 눈물이 난다. 그때 동주가 의대로 갔다면 그대로 민족에게 나름대로의 기여는 했겠지만 저 도저한 민족시인의 반열에 오르고 가면 갈수록 그 시와 그 이름이 만대로 뻗어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시는 설명을 듣고 이해하기보다는 10번 스무 번 더 읽어보는 것이, 그리고 외우는 것이 이웃을 위해서도 유용한 일임을 실천해 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압천과 서시>가 태어난 배경
이 시는 강희근 시인이 KBS의 동주 탄생 100주년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면서 교토 도시샤대학 캠퍼스에 직접 가서 쓴 시다.
거기. 캠퍼스 화단에 세워져 있는 지용의 <압천> 시비와 동주의 <서시> 시비를 보면서 쓴 시이며, 모더니즘 수법과 패로디의 생생함이 새삼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