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결을 위한 지속가능한 방법론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하며 살아간다. 아마 우리 모두는 내내 문제를 풀어야 하는 문제에 놓여 있지 않을까. 가벼운 시선으로, 무거운 책임감으로, 각자가 가진 다양한 문맥에 맞는 다양한 양상으로, 하지만 '문제를 풀어야 한다'라는 같은 문제에 놓여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의 수준과 양상은 각양각색이다. 기업의 제품기획자로서 고객의 문제를 발굴하고 정의하는 일, 남편으로서 집에 돌아와 지난 밤에 풀지 못했던 아내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일, 나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몸과 마음의 상태를 관리하는 일, 저녁 거리를 구상하고 준비하는 일, 늦지 않게 강아지 산책을 가기 위해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일. 우리는 매 순간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하며 살아간다.
나는 문제를 '완벽하게' 정의하는 일에 유난히 열씸이었다. 생각해보면 문제를 잘 풀고 싶어서 그런건지 그저 정의하는 일 자체에 관성적으로 몰두해 있는건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다. 원래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최근은 후자로 중심축이 기울어져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반성없이 복잡한 행동을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목적을 잃고 주객전도되는 순간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 문제를 잘 정의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인데, 중심축이 흐트러진 내가 정말로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을까?
간단히 생각해서 목적한 결과를 얻기 위한 완벽한 환경을 구축하면, 그러니까 특정한 방정식을 찾으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여기기 쉽다. 교실에서 스마트폰을 너무 자주하는 것이 문제라면 등교 후 스마트폰을 걷으면 된다? 그럴싸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하다. 문제는 복잡하게 구조화되어 있고 또한 계층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교실에서 스마트폰을 하는 것은 왜 문제인가? 사용량 자체가 문제인가? 어느 정도가 되면 문제인가? 수업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인가? 성적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것은 정말로 문제인가? 혹은 자기조절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적 환경을 구축하는 데에 문제가 되나? 그 지향점은 어떤 기준으로 보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가? 무엇이 문제 해결인가?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문제는 일련의 시계열적 흐름을 스냅(snap)함으로써 '특정한 현상'으로 드러나게 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문제는 정의하는 관점에 따라, 그리고 문제를 이해하는 나의 수준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상황과 문맥에 따라 문제는 다르게 정의할 수 있기 때문에 변화의 속성을 내포한다. 현실적으로 모든 변화를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다변화되는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변화에 대한 예측력은 오히려 낮아진다. 극단적으로 과거부터 미래에 이르는 모든 변수들과 관계에 대해 깊이있게 탐색하고 인과적인 분석을 심도있게 진행하면 이 문제를 완벽히 이해하여 완벽히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일은 잘 통제된 실험실 장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여러가지 통계적인 방법론을 활용한다면 일정 수준의 일반화는 가능하겠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현실에서는 실제로 접하는 문제 속 변수의 규모나 현상의 빈도, 그 분석에 대한 시간과 비용 면에서 제약사항이 많다. 또한 문제를 정의하는 관점 또한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수학을 활용하여 과학적 사실을 증명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때문에 일상에서 인과를 밝혀내는 일은 비효율적이다.
문제가 가지는 계층이나 구조에 대한 복잡성과 문제가 가지는 변화의 속성을 고려하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고자 고안해 낸 방정식은 단기간의 내부의(internal) 문제에는 견고한(robust) 성질을 가지지만 장기적인 문제인 외부의(external) 새로운 변화에는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 놓이게 될 확률이 높다. 문제 해결 과정을 단순히 방정식을 찾아내어 내일까지 시험지를 제출하는 과업으로 생각하는 순간 모델은 시험에 과적합(overfit)되고 시험이 아닌 환경에 대한 적응, 즉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력은 떨어지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정식을 고안하는 일에는 이러한 맹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문제를 정말로 잘 해결하고 있나? 문제를 대하는 데에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나? 긴 고민 끝에 최근에서야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방정식을 고안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방정식을 산출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문제를 나의 기준으로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점은 결국 방정식을 고안하려는 행위로 귀결되곤 했다.
언제나 군더더기 없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절대적이고 아름다운 선은, 완벽한 불변의 모델은 없다. 사건의 확률은 무한히 복잡해지고 우리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변화 속에서 의사결정을 내리고 행동해야만 한다. 계속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방정식은 아름다운 선을 가진 불변의 모델이 될 것이다. 변화를 모두, 아니 충분한 수준만이라도 예측할 수 있을까? 혹은 그것이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을까? 앞서 말한 것처럼 불가능하다. 우리가 의식하는 문제는 다양한 계층 속 복잡한 변수와의 상호작용계의 한 점(snap)이다. 허우적거리며 시험지에 방정식을 적어내는 데에 급급하는 하루가 누적되면 위험을 피할 확률이 높아지는 동시에 새로운 위험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는, 장기적으로 문제를 회피해냄으로써 변화에 대한 취약성(fragile)이 증가하는 상태가 되어 약해진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분석하고 예측함으로써 대응하려 애써왔다. 이러한 일련의 성실한 활동들이 결국 예측하지 않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떨어뜨리고 내가 겨우 구현한 작은 안정된 방정식 속에서만 안심할 수 있도록 취약한 상태로 만들었다. 그 방식에 지나치게 골몰하게 되면서부터는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남의 탓, 환경 탓을 하기 일쑤였다. 나름의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점잖은 뉘앙스로 '완벽하게 분석한' 문제에 대해 주변인들에게 설파하고 나는 그 안전한 결론 속으로 숨어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일터에서 시작된 그 패턴은 점차 타인들에게, 가까운 소중한 사람들에게, 결국 나 스스로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러면서 아마 나는 정말로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이 아닌, 문제를 예쁘게 정의하는 일에 빠져 있는 허울뿐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비밀은 방정식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방정식은 완벽할 수 없으며 실패(시행착오)는 예정되어 있고 계속해서 개선해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실패를 이겨내는 힘이 나는 부족했다. 나에게 있어 실패로 생각되었던 부분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실패한다고 평가되는 일을 견디는 일'이었다. 나의 해결책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로 이루어진 제안으로 주변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어렵다. 두렵다. 결론적으로 그러한 위험을 나는 감수하기보다는 회피하고 애썼다.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평가와 질책을 받는 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가득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필연적이다. 오히려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결과를 성취해내었다면 보다 그 경험들은 보다 실질적인 문제해결과정에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시행착오의 과정을 결론적인 실패로 오인하고, 실패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과정에 뛰어드는 것이 아마 두려웠던 것이리라. 그럴싸한 말들로 포장하여 안전한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했지만 결국 나는 문제해결보다는 Comfort zone에 머무는 것이 편하고 좋았던 것이다. 기획안을 발표하는 일에도, 아내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일에도, 자신과의 사소한 약속을 지키는 일에서도 나는 나만의 실제 문제 해결과는 동떨어질수 밖에 없는 '나만의 안전하고 완벽한 방정식'을 고안하는 일에만 골몰하고 고집하느라 나는 취약해져 가고 있었다.
목적한 결과를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눈 앞의 결과에 집착하지 말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곧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필연적이다. 변화를 받아들이자. 시행착오를 실패로 오인하여 두려워하지 말자. 오직 행동(try)하지 않는 것만이 실패이다. 완벽주의가 아닌 완료주의에 집중하자. 위험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이해하고, 기꺼이 감수하자. 의사결정은 어떤 득을 취할지 결정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떤 위험을 얼마나 감수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