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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시민 Jun 23. 2024

산을 오르면서

산을 오르면서 느끼는 감정은 인생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오르는 과정은 힘들지만 정상에 도착해서 느끼는 감정은 성취감과 희열감이 느껴지며 내려오는 길 또한 수월하다고 단순하게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닌 많은 감정을 느끼고 같이 올라간 사람과의 감정 공유까지 된다.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는 전경은 아름답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어떤 고통과 시련 또한 건물들에 가려져 모든 것을 잊은 듯하다. 평화, 그저 평화만이 느껴지는 곳이 된다. 등산이 취미였던 적은 없지만 건강을 생각하며 즐겨 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쉽고 편한 일만 하며 살 수 없지만 단순하게 사는 법을 선택하면 단순하고 평화로움만 가득하다. 산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불편함과 피곤함 들을 다 떨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점은 항상 피곤하고 괴로웠다. 누군가를 앞에 두고 남을 헐뜯거나, 입에 오르내리거나, 비교하거나, 비웃거나 많은 피곤들이 오고 가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 점들을 환기 시킬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한 행동을 하는 법을 찾는 것이었고 등산이 적절하였다. 산을 오를 때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생이 매일 피곤하였다. 인간관계를 나만 못하는 건가 자문하는 일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생겼다. 어디선가 잘 보일 필요도 없음에도 항상 웃고 웃고 또 웃었다. 집에 와서는 울었다.

관계에 대한 피곤함이 쌓이자 몸으로 나타났다. 일과 겹쳐져 몸은 미친 듯이 바닥을 향해 망가지는 것에 대한 정점을 찍었으며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낄 수 있도록 바닥의 맛을 보았다.

대체 다 이러고 사는 건지, 이런 인간들만 만나고 산 것인지 짧고 좁은 경험으로는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내 곁에는 좋은 사람만 있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지만 피곤함이 따르지 않기를 원하였다.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을 옆에 둬서도 안되지만 나쁜 말을 일상생활화하는 사람을 두는 것도 어지간히 좋은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희망만 있는 삶이 더 나을지도, 더 행복할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말만 전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응원을 보내고, 내가 아무리 바닥을 기어도 울어도 긍정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은 남에게도 듣고 싶지 않은 말이라 생각하며 삼켰다. 나도 그 막말들을 내뱉을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면 나 역시도 잘한 선택들, 또는 더 나은 말들, 남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진 않았을지 걱정이 되었다. 누군가 내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들이 뾰족한 가시처럼 박혀 아파했을까 봐 염려되었다. 누군가 그때 상처받았다고 말해준다면 나 역시 속 좁게 굴 것이 아니라,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미안함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였다. 나조차도 누군가에게 상처받아 외면하고 회피했음에도 불구하고 말해준다면 사과하는 말들을 쏟아 내고 싶었다. 


산을 오르고 나를 들여다보면서 놓치는 점이 없을지 생각하며 지냈다. 놓친 사람들에게는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고 나의 마음에 가시들을 꽂히게 한 사람들에게는 나도 넓은 마음이 되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도망 갔다고 설명하고 싶은, 그런 반성하는 마음이 불쑥 생겨나기도 하였다. 괘씸하면서도 나도 그랬을까 봐 주저하였다.


살면서 더 나은 선택들이 무엇일지 모르겠지만 악의 선택은 하고 싶지 않다. 

최악이거나 행악이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되도록이면 덜하고 싶다. 

악한 것보단 착함을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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