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피는 계절이 왔다.
이맘때쯤 아파트 입구부터 담장 벽을 가득 채우던 능소화는 이 계절 여름을 기억하기 좋은 꽃이 되었다. 하나둘씩 꽃들이 피기 시작해 벽을 차지하였다. 쉽게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기에 사진으로 남겨보려고 하였지만 겨우 아름다움의 발끝을 따라가는 정도가 될 뿐이었다. 매번 그 자리에서 피는 걸 알았으니 지금은 눈으로만 가끔 담았다. 내년에도 필 것을 알기에 사진으로 담아 놓지 않아도 언제나 그 자리에 피어있을 것이란 걸 알아서 바라보는 정도에도 만족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꽃에 눈길이 갔다. 능소화뿐만 아니라, 아파트 주변에 있는 꽃들은 사진에 한 번씩 다 담았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렇게 사진을 찍어댔다. 예전에는 길 가다 보이면 이쁘네 하고 말 꽃들은 어느새 내 배경화면 혹은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까지 차지하였다.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피고 지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언제쯤 꽃이 피겠구나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꽃이 피면 반가웠다. 작년에도 봤는데 올해 보니 더 기뻤다. 또 폈구나 싶었다. 날씨가 이상기후가 많아진 만큼 좀 더 하루 일찍 피는 꽃들도 많아졌고 그새 폈는가 싶어서 살펴보면 이미 지고 없는 꽃들도 많았다. 이렇게 만남이 짧아져서였을까. 꽃들이 피면 반가움이 올라오는 감정이 생소하기도 하고 신기하였다. 어쩌면 꽃을 볼 때마다 대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였다.
길 가다 어린잎이 올라와도 밝은 목소리로 자그마한 꽃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하는가 하면, 집에서 키우는 꽃들에게도 사랑을 듬뿍 나눠주었다. 난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였는데, 그런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다. 꽃을 대하는 엄마는 항상 밝았다.
작은 것부터 아름답고 소중한 생각을 가지는 마음이 부럽기도 하고 본받고 싶기도 하다. 그냥 저렇게 될 수 없어서 바라보기만 할 때도 있다. 아니면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어서 사진으로라도 담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밝은 목소리로 꽃에게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 예쁜 순간을 평생 기억할 수 있도록 사진에 담는 일은 할 수 있으니, 내 능력껏 이 정도라도 해서 간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방법 또한 꽃을 대하는 방식이었고 사람마다 다른 것이겠지라고.
지나쳐가는 것들을 눈에 담고 관찰하여 글로 녹여내기 위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