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혼란스러움 속에서 보냈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왜냐면,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내가 생각해 왔던 대로, 누군가도 똑같이 그럴 거라고 당연히 판단하고 살아오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갈등도 발생하고, 속상한 일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세상일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된다면 후회할 일도 없고, 걱정거리도 없다. 얄궂게도 사는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나를 힘겹게 하는 것들은 많은 것 같은데, 그것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서 더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모든 감정을 제어하고, 다스릴 줄 알고, 컨트롤할 수는 없다.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고, 풀기 어려운 일들에 대해서도 그때그때 대처할 수 없다. 이번 달,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까, 하면서 A에게 고민을 털어놨는데,
"넌 너무 하는 게 많아. 조금 쉬어가면서 해" 라며 한 마디로 정리를 해줬다
20대 중반을 넘으면서 외로움과 함께 번아웃이 더 짙어졌다. 친구들이 한둘씩 자리를 잡으면서, 마음에 번아웃은 쌓여만 갔다. 대기업, 대학원 안 간다고 하는 친구들은 잘만갔다. 20대가 이렇다면, 30대, 40대는 얼마나 더 고독해진다는 말인가. 시간의 속도가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던데, 번아웃의 크기도 나이에 비례하는 것만 같다. 여하튼 그러하다.
결국 일이 끝나고 마음이 붕 뜬 지난 일주일, 내가 내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없어서, 나는 혼술을 했다. 술을 쳐다보지 않겠다는 결심도 한 달이나 두 달이 지나면 잊는다. 한 잔 두 잔 기울이노라면, 술병은 일렬로 줄을 선다. 마치 잘 훈련받은 군인들의 열병식을 방불케 한다. 그런 밤이면 세상이 모두 내 것이고 못할 게 없이 의기양양하다.
신당역 근처에 위치한 혼술바
그래도 혼술이 주는 좋은 점을 꼽아보라면,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적당하게 자기 몸에 맞게끔 즐기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술이 갖는 장점 가운데 좋은 점은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취하는 느낌이 좋다. 적당한 취기는 영혼의 감도를 증폭시켜 준다. 혼술을 하면서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아 결말에 따라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영화와 책 그리고 음악 등 전보다 예술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반 고흐가 압생트에 미쳐 귀를 자른 것도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된다.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 적당한 혼술은 혼자랑 잘 지낼 수 있게 도와준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 두기가 영원하진 않은 게 증명이 되었고, 잠시 동안이나마 외로운 건 싫으니까 혼술에 올인하려 했다.
그렇다고 술이 늘 좋다는 건 아니다. 인간이 만든 발명품 가운데 술만큼 모순되고 논쟁적인 것은 없다. 술은 애주가들의 한없는 사랑과 찬사를 받는다. 반면에, 지나친 음주가 끼친 해악이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술 때문에 벌어진 흉악하고도 민망한 일을 헤아릴 수도 없다. 매일 미디어를 통해 술 때문에 벌어진 각종 사고나 사건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니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악의 근원이라 마냥 매도할 수만은 없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람이 어떻게 절제하고 조절하느냐에 달려있다. 술이 사람을 뭐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마시는 사람이 절제하지 못해 항상 탈이 난다. 술자리에서 보여주는 절제의 미학은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우리는 술과 함께 살아가며, 우리 자신을 알고 절제하며,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절제와 조절이 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좋은 면을 더욱 크게 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