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들의 스물일곱 번째 생일입니다

by Dubu

오늘은 기쁜 수학여행에 나선 단원고 학생이 세월호 사고로 몰살한 날이다. 큰 사고가 났음에도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말을 믿고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던 생때같은 고등학생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그 사이에 선장과 선원은 탈출해서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눈치 빠른 어른들도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순진한 학생들은 대부분 이유도 모르고 찬 바닷물 속에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세월호는 엄청난 재앙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수 백 명이 바다에 수장되었다. 비록 사건의 진실은 저 너머에 있어 커다란 배가 왜, 어떻게 침몰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 국가의 미흡한 대처로 인해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져갔다.


세월호는 한국의 역사의 축소판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와 그 측근인 권력자들은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을 갔다. 결국 군주가 사라진 한양에서 왜 군대를 막아낸 것은 불쌍한 백성이었다. 한국전쟁 때도 이승만과 그 주변의 권력자들은 대전으로 미리 도망을 가버렸다. 그러고 나서 서울 시민이 건너고 있는 도중에 한강다리를 끊어버렸다. 국민이 살려야 하는 대통령이 저만 살겠다고 국민을 죽이고는 대전에 편히 앉아서 서울 사수를 명령하는 파렴치한 짓을 이승만이 저질렀다. 그 결과 군인이 아닌 민간인만 100만 명이 사망했다. 그 전의 고려 시대도 별다르지 않았다. 왕과 권력자는 강화도로 피난 간 사이 한반도에 남아 있던 백성은 사냥꾼에 당하는 짐승처럼 도륙당했다.


대통령답지 않은 대통령의 최후가 좋을 리가 없었다. 이승만은 쫓겨났고 박정희는 측근의 두 방을 맞고 즉사했고 전두환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흉내를 내던 이명박과 박근혜도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이런 역사의 질곡을 버텨낸 한국 국민은 다시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20년 만에 최악의 적자 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국제 정치적으로는 최대의 위기에 당면하고 있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해방 직후와 마찬가지로 좌우 극한 대립에 더해, '한남'과 '된장녀', 'MZ'와 '꼰대', '문딩이'와 '깽깽이', '빨갱이'와 '토착왜구', '기업주'와 '노동자'가 서로 죽자고 싸우고 있다. 북한과 싸우기도 전에 한국 자체가 스스로 멸망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한국을 향해 발사하기 전에 말이다. 이런 와중에 부자들은 오늘도 외제 골프채, 외제 자동차, 고급아파트, 외제 사치품 가방과 구두, 옷 자랑에 여념이 없고, 수십만 가구의 수백만 명에 이르는 가난한 이들은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 먹고 있다. 하루에 36명이 자살하여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고, 노인 빈곤율과 청소년 자살률에도 세계 1등을 하고 있다. 1등만 좋아하는 나라다운 일이다.


결국 한반도의 역사에서 늘 반복된 대로 한국 국민에게 남은 것은 '각자도생'뿐인가?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전 국민은 슬퍼했다. 페이스북은 온통 노란 물결로 휘감겼으며 사람들의 가슴팍에는 노란 리본이 하나씩 붙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은 세월호를 잊었다. 가슴팍에 붙어 있던 노란 리본도 많이 사라졌다. 이 년이 지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며 이 사건을 감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정치적 이념과 테두리 안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나와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해서 무관심하기보다는, 앞으로 있을 나의 친구들이, 가족들이 그리고 '내'가 재앙에 닥칠 수 있다는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단순한 사고로, 아픔으로 끝맺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연관성을 가지고 '나'의 문제로 직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지금은 아파하고 슬퍼하기보다는, 분노하고 연합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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