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포크

by Dubu

추억의 사전적 의미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기억함이다. 따라서 꼭 좋은 것만 아니라 아프고 힘든 일에 대한 기억도 포함된다. 그런데 유독 추억이라는 단어는 아련하게 그리움을 동반하는 긍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나간 일을 다시 돌이켜 기억하면 힘든 일에도 아련한 베일이 씌워지고 먼 남의 일처럼 보여 그때의 고통이나 아픔도 상쇄되나 보다.


나는 추억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잠시 지난날들을 소환해 보기로 했다. 많은 일들이 지나갔지만 유독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저장된 장면들이 있다. 그중에 어떤 일관성을 지닌 장면들이 포착되었다.


부모님과 나들이를 떠나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목적지에 도착해 바다나 계곡에 뛰어들고, 유원지와 놀이공원을 누비며 즐거운 추억을 쌓은 경험이 있다. 그런 경험만큼 행복했던, 때론 그런 경험보다 훨씬 더 나를 기쁘게 했던 무언가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 추억의 무대는 바로 휴게소다.

KakaoTalk_20230510_191030915.png 출처: EVPOST

7,8세 정도로 추정되는 때에 나는 길고 긴 고속도로 중간중간 자리 잡은 휴게소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아이였다.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명절에 외가/친가를 방문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어느새 차는 휴게소로 향하곤 했다. 차를 타고 먼 거리를 오는 동안 무엇도 먹지 못한 탓에 고속도로 위에서는 언제나 잔뜩 배가 고픈 상태였다. 그런 나에게 휴게소가 가까워진다는 표지판은, 커다랗고 파란 표지판 가운데 떡하니 그려진 하얀 숟가락과 포크 모양 그림은 곧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는 희망찬 신호였다.


얼마 전 가족들과 이야기하던 도중, 어릴 적 고속도로 여행의 추억이 수다의 주제가 되었다. 부모님 모두 입을 모아 나를 놀렸다. 휴게소 안내 표지판이 나타나면 차에 탄 사람 중 내가 가장 먼저 그 표지판을 알아보았다. 표지판 한가운데 그려진 숟가락 포크 그림을 보고서는 말이다. 그만큼 나는 누구보다 음식에 진심인 아이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이 열정은 대단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땐 내 돈을 쓰지 않고, 가격 걱정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먹을 수 있었으니까 더 신이 날 수 있었다. 철없는 내 부탁을 마다하지 않고 매번 휴게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신 부모님의 배려 덕분이기도 하다.


지금은 어릴 적과 비교해서 숟가락과 포크 그림이 그려진 휴게소 표지판을 볼 기회가 적어졌다. 나는 투잡을 하며 휴일을 내기 어려울 만큼 바쁘게 보내고 있고, 동생은 내년에 고3이 되기 때문에 미리 입시 준비를 시작하며 치열한 학창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사실상 가족 모두 모일 시간을 내기 어려워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명절 모임에 참여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젠 숟가락 포크 그림을 보더라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휴게소를 방문하는 기회가 적어져서는 아니다. 직접 돈을 벌고, 그 돈을 쓰는 입장이 되니 알게 된 현실 때문이다. 이제 나는 무언가를 먹을 때 맛이나 즐거움보다 금액을 먼저 확인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런 순간이 많아질수록 그간 내 먹성을 감당하느라 고생했을 부모님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부담감도 커지고 있다.


숟가락 포크 그림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던 천진난만한 아이였던 나는 이제 똑같은 그림을 보고 삶의 무게와 지갑 사정을 여실히 실감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어릴 때는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행복을 선사하던 그림이 고민거리가 되어버리다니. 이런 상황을 그 누가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있다. 월급 빼곤 전부 오르는 물가 때문에 생활이 팍팍해질수록 추억 속으로 회귀하고 싶은 바람만 커진다. 하지만 슬픈 마음만 키우다간 새로운 추억을 만들지 못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고 추억으로 남길 새로운 숟가락 포크 그림을 찾아다니는 요즘이다. 이런 질문으로 글을 마무리해보고 싶다.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도 비슷한 추억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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