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야 하는 소음

by Dubu

근 한 달간 광화문만 몇 번씩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근 스타벅스에 가서 창가가 보이는 쪽에 앉으면 사원증을 목에 걸고 들어오는 광화문 직장인들이 보다.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지는 시위, 집회의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 키보드 위에서 바쁘게 손을 움직이던 기자들도 볼 수 있다. 창가 건너로 보이는 빽빽한 빌딩들 가운데 어떤 곳이라도 내 책상 하나만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약국에서 매일 8시간씩 아르바이트하는 대신 청계광장 끝에 있는 여러 신문사 중 하나로 들어가 광화문에서 하루 여덟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으로 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광화문은 늘 각기 다른 시위로 아우성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어느샌가 시위가 광화문의 장소성을 대변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장소성이 잡음의 근원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노이즈는 너무나도 익숙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마이크 음성, 노랫소리, 구호, 가두 행렬 이 모든 것이 소음으로 환원되었다. 언제쯤이면 광화문이 유유자적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면 고착화된 장소성으로 인해 어쩐지 불가능한 씁쓸한 결론에 달한다.

시인 김수영은 '심금의 교류를 할 수 있는 언어, 오늘날의 우리들이 처해있는 인간의 형상을 전달하는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언어, 인간의 장래의 목적을 위해서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자유로운 언어-이러한 언어가 없는 사회는 단순한 전달과 노예의 언어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라고 천명했다. 우리가 늘 쓰는 언어가 누군가에게는 긴급한 수단인 것이다.


이 세상에는 소음과 잡음이 말 그대로 도처에 있기 때문에 귀를 막고 싶은 소음도 있겠다만, '들려야 하는 소음'이라는 것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가 '말대답을 할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광화문을 오가는 사람들이 소음을 말대답으로 인정하고, 그 근처에 있는 주파수까지 파악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소리의 근원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나아가 우리 모두 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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