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점부터 삶이 꽤 심플해졌다. 몇 가지 책을 읽고, 몇 가지 법칙을 가지고 요령 있게 살아냈다. 믿는 구석이 적으면 적을수록 삶은 단순해진다. 달리 말해 편해진다. 솔직히 말해 나는 지금 변화가 아닌 유지를 위해 애쓰며 살고 있다. 그런 시기에 깊이 있는 사색이 주는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말해준 책을 만났다. 이 책을 읽은 후, 어쩌면 안온함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고립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의 균열이 생겼다. 이 시간부터 내가 지독히 노력하는 것들이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지, 평범하게 만드는지 판단해야겠다. 오랜만에 나를 긴장시키는 책을 만났다.
이제는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위해서만 내게 허용된 시간을 써야겠다. 그 밖에 모든 것들엔 휘둘리지 않자고 자주 다짐해야겠다. 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갖는 건 미덕이지만, 그것이 내가 바라던 것인지는 적어도 나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매달 꽂히는 월급의 숫자가 삶의 기준이 된다면 눈 감는 날에 조금은 아쉽지 않을까? 외국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삶을 꽤 오랫동안 바라왔던 건 맞지만 회사와 월급 두 가지 단어로 내 삶을 구성하는 건 아무래도 부족하다.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축냈던 과거를 꼼꼼히 점검해 보자. 내 마음대로 삶을 움켜쥐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보자. 바라는 걸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말하자. 그냥 하지 말고 '더' 삶의 의지를 가져보자. 삶의 방향키를 돌려보겠다 판단된다면 좌초되지 않도록 애써 봐야겠다. 비록 그 결과가 모비딕을 만난 포경선 꼴일지도 모르겠지만. 재고 따지는 삶은 근사하지 않으니까.
앞으로의 삶은 죽기 전까지 온통 사춘기여야겠다. 다 컸다고 자만하기엔 아직 너무 어리다. 존경하던 어른들은 내가 고민해 온 시간의 몇 배는 고민하다 존경받을 만한 어른이 되었다는 걸 잊지 말자. 몸이 다 자란 나를 키우기 위해선 생각을 먹는 수밖에 없다.
책을 읽고 내가 바라는 진정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니. 육체와 영혼의 싸움을 목격하게 됐다. 나는 나로 태어났지만, 나라는 영혼이 김아인의 육체를 만난 것도 같다. 이 영원의 시간 속에 100년을 부여받은 살덩이를 만난 것이다. 진짜 '나'는 육체보단 영혼 쪽에 있다고 믿고 싶다. 되는대로 사는 게 아니라 의지와 마음으로 인생을 이끌어가고 싶어서 그렇다. 그래서 더 자주, 피곤한 육체가 아닌 영혼에게 물어봐야 한다. 어떻게 살아보고 싶은지. 그렇다면 포기가 쉬워지지는 않지 않을까.
피하고 미루는 일은 즐겁지만, 우주에 비해 티끌 같은 시간을 가진 나는 조금 더 조급해질 필요가 있다. 게다가 발전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삶의 의미지 않은가. 자의식이 높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신성한 생각, 신의 뜻이 아닌 내 삶은 내가 조립해 보겠다는 당찬 선언. 다시금 삶의 목표점을 그쪽으로 찍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