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Sep 25. 2023

상상력

상상할 수 있어 살아갈 수 있다.

상상력 :
1.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힘.
2. 철학 상상을 하는 심적 능력. 칸트 철학에서는 감성과 오성(悟性)을 매개로 하여 인식을 성립시키는 능력을 이른다.


  '상상력' 하면 보통 과학을 떠올린다. 쉽게 SF 영화나 소설을 함께 떠올리기도 한다. 과학발전에 있어서도 상상하는 것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교육에 있어 상상력과 창의력 키우기는 언제나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창의력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상상력은 마음속으로 생성된 것을 시각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둘은 서로 다르지만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래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능력으로 꼽히기에 많은 것에 '창의'가 앞에 붙는다. 인성교육마저 '창의인성교육'을 내세운다.

우리 때만 조금 과감하거나 독특하게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면 상상력이 좋다고 칭찬받았으나 이제 웬만한 것을 말해서는 그런 칭찬을 받을 수 없다. 이미 상상한 것이 현실이 되어 있는 경우도 많고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공유되고 있다. 이제 단순한 상상력으로는 창의성이 돋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우리 아이들, 참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교육은 둘째치고 이 어려운 시대에서 살아내기 위한 상상력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나는 무협지를 사랑했다. (과거형으로 쓰기가 무색하게 지금도 웹소설로 열심히 보고 있다.)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신기했다. 경공술로 날아가듯이 다니고 내공을 쌓아 검기를 휘몰아치고 검강을 몰아쳐서 나쁜 놈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문파를 지켜내거나 복수하는 것이 멋지지 아니한가. 무협지에 나오는 많은 능력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그 속에 얽혀있는 치정싸움, 배신과 복수, 권선징악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뛰어난 실력에 미모를 겸비하고 품성을 옵션으로 장착하는 주인공은 이 세상 사람일 수 없다. 무협지를 보면서 결국 선이 이길 수밖에 없는 믿음을 가졌다. 내가 당해도 누군가 복수해 주는 이야기기가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희망을 가졌다.

무협지에 이어 희망을 놓치지 않게 해 준 것은 "마블"이었다. 남다른 능력 하나씩 다 가지고 있으며 지구를 구하기 위해 언제나 출동 준비가 되어 있는 주인공들! 인간적인 실수를 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능력자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웃고 울었으며, 지구와 지구인을 지켜주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나는 아직도 즐겁게 상상한다. 억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세상의 부조리를 보고, 사회에 분노할 일이 생길 때마다 마블의 주인공이 "짠"하고 나타나길 꿈꾼다. 사실 상상으로는 이미 부정부패한 이들을 나름 정의롭게 깨부쉈다. (고백하건대 가끔은 그들의 죽음마저 꿈꾸었다.) 현실이 아니어도 약간은 통쾌했다. 숨통이 틔였다. 그렇다. 소심하고 내향적인 내게 상상력은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에게도 그런 상상력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큰 아이가 힘든 중학교 생활을 보내면서 어느 날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아이들에게 복수하는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돌렸다고 자기는 너무 나쁜 사람일지 모르겠다면서 울었다. 이런 나쁜 딸에게 엄마가 실망스러워할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내 아이를 괴롭게 만든 아이들은 죄책감을 느꼈을까. 왠지 아닐 것 같아서 한숨이 나왔다.

상상한 것만으로도 본인을 나쁜 아이로 느끼는 딸을 보면서 괜찮다고 말했다. 현실을 견디어내기 위함이었으리라. 미움을 토해내지 못하고 뜨거운 그 자체로 삼켜내야 했던 아이의 유일한 숨구멍이었으리라. 상상했기에 버틸 수 있었을 것이며 실제로 행하지 않았던 것이고, 스스로를 그 상황과 감정에 먹히지 않았을 것이라 말해주었다. 그 시간을 버티어낼 수 있었던 것은,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상상이 가능했기 때문이라 믿는다.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선하고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살다 보면 입에서 욕이 자동발사하는 상황들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그때마다 직설적으로 말하거나 당한 그대로 복수할 수 없다. 내가 아픈 만큼 상대를 아프게 할 수도 없고 정죄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냥 두기에는 자신이 너무 괴롭다. 그럴 때 난 살기 위해 상상한다. 정의로운 무협인, 아이언맨, 슈퍼맨이 나의 복수를 해주리라 상상하면서 짜릿함을 느낀다. 그 힘으로 그 시간을 이겨낸다. 어쩌면 유치할 만큼 권선징악을 믿고 사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상상력이 나를 버티게 해 준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손가락을 꼽을 수도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상상력은 허용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상상력은 상상으로 끝내되 감정을 정리할 수 있게 하고 상처를 이겨낼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 또한 상상을 통해 복수를 감행해 온 나의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상함으로써 풀어낼 수 있고 스스로를 그 상황에 가두지 않을 수 있다면 되려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 나를 위해 복수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살아갈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상상력은 실패와 좌절, 포기, 상처에서 회복하게 돋는 건강한 능력이 될 수 있음을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Noooo~ man 멀리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