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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Sep 20. 2023

Noooo~ man  멀리하기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것이 많은 사람은 점점 멀리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쌓이는 경험만큼이나 겁이 많아진다. 아마 겪은 일이 많아지고 본 것이 다양해져서 그런가 보다. 특히 학교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에 대해서는 해가 갈수록 무섭다. 어떻게 그렇게 다칠 수 있나 싶기도 한데 그런 의구심은 더 이상 품어지지 않는다. 그냥 순간이다. 눈 한번 깜빡하는 순간, 아이들은 가지각색의 이유로 다친다.


"운동장에서 보온병에 담긴 물 마시다가 공에 맞아서 치아 손상, 문으로 장난하다가 손가락 골절, 복도에서 저학년이 돌진하다 부딪쳤는데 하필 턱이 맞아서 치아 손상, 동물 만지기 체험 중 뱀에게 귀를 물리는 사건, 안전 차단기에 머리를 맞아 타박상, 그네 타는 아이 발에 맞아 뇌진탕, 긴 목도리가 차 문에 끼어서 난 교통사고, 혼자 신나서 뛰어가다 골대에 부딪쳐서 생긴 이마의 혹, 배수로 발 빠짐 사고, 목걸이 이름표를 휘두르다 눈에 맞는 사건, 신나서 하이파이브하다 상대 손가락에 각막이 긁히는 일 등등..."


  가끔 다쳐오는 아이에게 다친 이유를 들으면서도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여러 번 반복해서 묻기도 한다. "그렇게도 다칠 수 있다고? 정말?" 하면서 의아한 표정의 나를 아이는 억울하게 보면서 얼기설기 리액션으로 보여준다. 그런 사건을 겪고 나면 다친 아이가 가장 힘들고 부모가 속상하겠지만 담임으로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다치지 않게 할 수 있었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겁쟁이가 되어간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사자처럼 겉으로는 위풍당당하지만 속으로는 쫄보가 되어간다. 그래서 하라고 하는 것보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이래도 위험하고 저래도 위험하니 이것도 저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럼 아이를 아예 에어쿠션으로 감싸야 하나 싶다. 입에서 수시로 "안전안전"을 외친다는 것을 았을 때 나의 꼰대스러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럴 때쯤 누군가 나에게 도전을 말리는 사람은 만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전을 이유로 도전의 기회조차 날린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나이 많고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도전하는 사람을 막지 않았는가. 뭔가 해보려고 하면 태클을 걸지 않았는가. 그런 사람이... 나였다. 제자들이 왔을 때도, 딸들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때도, 누군가 육아조언을 구하거나 인생상담을 할 때도 내가 알고 있는 방향이 아니면 적극적으로 말리는 쪽이었다. 실패담을 기꺼이 꺼내놓으면서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면서까지 말렸다. 어쩌면 나의 그런 말에 주저앉은 사람도 꽤 있었을 것이다. 주저앉을 때까지 안 되는 이유를 나열했을 나를 상상하니 소름 돋는다. 상대에 대한 걱정이었겠지만 내가 실패했다고 그 사람이 실패하란 법은 없었을 텐데 왜 미리 막아섰을까. 그에게는 좋은 기회였을 수 있는데 섣불리 멈추게 한 것이라는 생각에 후회스럽다.

  나보다 더한 "노우우~ 맨"이 한 명 집에 있다. 계획적이고 이성적이며 걱정이 많은 그에게 낱낱이 해부당해 결국 버릴 수밖에 없는 즉흥적인 여행 제의와 나들이 제의가 얼마나 많은지, 셀 수도 없다. 그래서 뭔가 계획하려면 그를 배제한다. 조용히 여자 셋이 속닥거리며 모의하다 걸린다. 혹은 운전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은 반대를 이겨먹으리라 굳게 다짐한 상태로 슬쩍 이야기를 꺼낸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반대를 표명하는 남편에게 둘째 아이는 "노 맨"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즉흥 적이고 감정적으로 시작하는 일은 딸들하고만 하게 된다. 정말 하고 싶거나 가고 싶으면 무작정 지르고 본다. 수습은 어쩔 수 없이 해주는 것을 알기에 굳이 논의하지 않고 시작하고 본다. 욕먹을 각오로.


  살면서 실패하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운 것은 맞다. 그러나 어쩜 그 두려움으로 인해 시작도 전에 꺾인다면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는 꽃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나의 두려움을 전가하는 것은 상대를 내 기준에서 이미 재단한 결과였을 것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방향을 전환하거나 수정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낫다는 이제야 알다니. 내 실패와 두려움은 말해주되 참고하여 좋은 밑거름으로 삼길 바라면서 열렬히 해볼 것을, 나아갈 것을 응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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