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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Sep 18. 2023

공부 못해도 괜찮다고요?

학생이 공부하는 것은 학생의 기본 본분이다.

  고2 딸은 바쁘다. 아침에 잠깐 얼굴 보고 밤늦게 마중 나가 함께 들어오는 시간을 빼고는 볼 수가 없다.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자는 둘째가 지 언니를 2~3일 마주하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다. 그러다 보니 집안일은 뒷전이다. 사실 지 몸 하나 건사하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나 싶기도 하다. 며칠 전, 그런 딸을 깨워 샤워하라고 하면서 개 놓은 수건을 넣어달라 했다. 잠이 덜 깬 딸은 비틀비틀 정말 지 몸 하나 추슬러 욕실로 가기 바빴다. 덩그러니 그대로 놓여있는 수건을 보고 순간 폭발했다.


  "고2라고 바쁘고 피곤해 보여 잔소리를 안 했더니 너무 하네. 너무 해. 손하나를 까닥하지 않다니."


한바탕 쏟아진 잔소리에 삐쭉하더니 집안 정리 몇 가지를 했다. 그리곤 물었다.

 

  "엄마는 공부 잘하는 딸을 원하는 거야, 집안일을 열심히 하는 딸을 원하는 거야?"

  "아, 물론 집안일을 열심히 하면서 공부 잘하는 딸이지."

  "너무하네 너무해. 하나만 바라야지."


딸의 투덜거림에 순간 '욕심쟁이 엄마'가 되어버렸다. 속으로 공부 잘하는 것을 싫어하는 부모가 어디 있냐고 곱씹었다. 공부 잘하는 것 싫어하는 부모는 없다..... 고 생각했는데 요즘 부모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면 꼭 그렇지 않다.


  "저는요, 우리 애가 공부를 못해도 괜찮아요."

  "우리 애는 공부 잘 못해도 됩니다. 그저 친구들과 잘 지내고 인성 등이 바르게 서도록 부탁드립니다."


  공부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부모의 말을 가끔 듣는다. 신경 써줄 수가 없어서 에둘러하는 말일까. 그것도 아니면 학교에서는 사회성과 인성을 기르고 공부는 학원에서도 하면 된다는 불신의 말일까. 아니면 가정형편이 넉넉하여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괜찮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공부 말고 특출한 능력이 있는지 궁금하다. 공부를 못해도 된다는 말속에 깔린 저의를 알고 싶어 진다.

  "공부"를 도대체 무엇이라 생각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단순히 시험을 잘 보고 배운 내용을 잘 이해하고 레벨테스트에서 높은 등급을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맞춤법을 배우고 덧셈 뺄셈의 기본 연산을 시작으로 국어, 수학, 과학, 사회의 주지교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을 말하는 건가.


  "공부"는 결코 수업시간에만 배우는 교과 지식을 익히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1학년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화장실과 놀이터 이용법부터 통행방법, 친구들에게 하는 표현방법 등 생활과 밀접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등학교에서 공부라는 것은 결국 사회질서를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 필요한 기본지식을 익혀서 실천하게 돕는 것이다. 머리로 배우고 몸으로 익힌다. 몸으로 익힌 것으로 머리로 이해하는 과정이 될 수 도 있다. 바른 인성을 갖게 하기 위해 여러 도덕적 가치와 덕목도 수업시간에 배우고 학교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기본생활습관과 태도를 배우고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 "공부"임을  생각할 때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괜찮다는 것은 곧 우리 아이가 바른 인성을 함양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인성과 공부는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부모도 있지만 과연 그런지 되묻고 싶다. 수업을 잘 듣기 위해서 자기의 감정과 행동을 절제하는 것도 공부고, 주어진 일 즉 수업에 집중하고자 노력하는 태도 역시 공부로 얻을 수 있다. 기본 본분을 알고 잘 해내고자 할 때 그다음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 대해 못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세상에 나가 무슨 일은 잘할 수 있을까. 공부를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우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어느 학생이나 공부를 잘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예전에는 능력과 인성은 다른 분야로 구분되어 능력은 많은데 인성이 나쁜 사람도 있고 능력은 별로 없는데 품성이 좋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면서 만나본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깊게 알 수록, 오래 알 수록 그랬다. 성적만 좋은 사람 즉 능력만 좋은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티가 난다. 인성이 좋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하거나 사람 간에 문제가 생기고 불협화음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인성이 별로인 사람이 사실 능력도 별로인 경우가 많다. 인내, 노력, 절제, 배려 등의 인성을 공부하지 않아 지니지 못했기에 나이를 먹는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젊었을 때는 돋보일 정도로 능력이 있던 사람도 인성이 바탕되지 않으면 그대로 멈춘다. 인성이 바로 선 사람은 능력이 부족해도 늘 노력하고, 협조하고, 열정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이루어낸다. 점점 실력이 쌓여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는다. 결국, 나이 든 사람일수록 인성과 능력이 비례하는 것을 느낀다.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의미에서든지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를 못해도 된다는 마음은 갖지 않아야 아이도 공부해야겠다는 의지를 갖는다. 특히 "초등학교에서의 공부"는 더욱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워가는 과정이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면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괜찮다는 말을 넣어두어야 한다. 마음 깊이. 잘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을 격려하면서 삶에 대한 태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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