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을 위한 기회로 삼는다면 나아갈 수 없다.
한 젊은 교사의 죽음을 기점으로 한동안 교사 사회가 시끌벅적했다. 침울했으며 좌절했다. 그러면서 교육을 위해 모두 하나의 검은 점이 되었다. 슬픔과 미안함이 원동력이어서 처음에는 한 마음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어느 집단에서나 마찬가지로 순수함은 흐려지고 조금씩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넘어선 날 선 비판은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옳고 그름이 없는 속에서 자꾸 판가름 내려하는 모습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겼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몸으로 느낀다. 그 속에서 원래의 목적을 일깨우고자 하고 다시 마음을 모으려 하는 사람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드디어 9월 21일 '교권보호 4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는가.
분명 공교육에 문제가 있었다. 그것이 불거져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 악성민원으로 인해 교사와 여러 학생들이 피해를 보았고 학교는 불신의 공간으로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작은 실수와 피해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살얼음판도 이런 살얼음판이 없다.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로 생각보다 많은 동료를 잃었으며 잃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법이 바뀌어야 하고 학부모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만나는 모든 교사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과연 이 모든 문제가 진상이라 불리는 학부모에게 있는지,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많은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교사가 당하는 많은 피해는 오롯이 문제행동을 하는 아동과 폭언과 폭행, 협박을 일삼는 부모가 원인일까. 많은 이들이 외부에서 문제를 찾고 있는데 나는 자꾸 터지지 않는 고름을 지닌 내부 상태가 마음에 걸린다.
경력이 별로 없는 새내기 교사에게 일이 생기는 동안 선배교사들은 무엇을 했을까.
여러 차례 병가를 냈던 그 교실에 신참을 밀어 넣는 동안 왜 경력교사는 침묵했을까.
거절을 잘 못하는 교사에게 일이 몰렸을 때 나누어서 하자는 동료가 있는가.
상처 치료를 이유로 돈을 요구하는 학부모에게 그냥 치료비를 물어주라 한 관리자는 무고한가.
심각한 민원 관련하여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적극적으로 자기 일처럼 돕는 사람이 있는가.
묻고 싶다. 아니, 나에게 묻는다. 내부가 썩어가는 것을 그냥 묵인하면서 외부에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난 자꾸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정말 내부에는, 학교 공간에는 문제가 전혀 없이 외부의 공격으로만 동료교사들이 유명을 달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외부의 공격만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학교 구조가 가진 문제를 거론하면 순간 '내부고발자' 또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이 되는 분위기에 숨이 막힌다.
교권을 보호하고 지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한 법 개정은 필요하다. 내 아이 기분이 가장 중요하여 민원을 넣어 학급의 다른 아이들과 교사에게 큰 피해를 주는 부모들을 제재하는 규정도 필요하다. 동시에 지금이 내부의 문제를 바로 잡고 썩은 고름과 굳어진 꼰대문화를 짜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모두가 권리를 외치는데 나는 '의무'를 강조하는 꼴이지만 정말 교육을 위한다면 교사는 그 도리를 다해야 하며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기류를 타는 자에 신물이 난다. 이런 분위기에 상담을 해야겠냐, 운동회를 해야겠냐 등등 그동안 했던 모든 교육활동에 한숨을 내쉬는 자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싶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집단 이기주의를 팽창시켜 조금 더 권익을 얻어내고자 하는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정신 차리라고, 외부의 공격보다 어쩌면 더 위험한 것은 내부가 썩어가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일지 모른다고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고 외치고 싶다.
아직 대한민국 교육은 희망이 있다. 교사가 저마다 검은 점으로 마음을 모았을 때 많은 부모들이 함께 해주고 응원하고 변화하고자 노력해 주니 말이다. 이제는 그런 힘을 바탕으로 내부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교육이 산다. 그래야지만 제대로 된 교육 공간에서 학생은 배울 수 있으며 교사를 가르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