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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Jul 26. 2023

학교를 보내는 이유

어떤 목적으로 학교를 보내는지 궁금해졌다.

  단 한 번도 학교에 보내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어린이집-유치원-학교를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하고 보냈다. 아마 중학교를 힘들게 보낸 큰 아이가 없었더라면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를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힘든 시기를 보낸 아이는 고등학교 가서도 선뜻 친구 곁에 다가서지도 내밀어주는 손을 덥석 잡지도 못했다.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아야겠다고 결단하고 아이의 등을 밀었다.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에게 나보다 애아빠가 더 단호했다. 아이가 친구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손을 내밀 수 있는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였다. 시간을 더 준다 해도 용기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했다. 학교 다니는 것을 사랑한 아이는 억지로 용기를 짜내고 결국 자기만의 세상에서 걸어 나왔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참 많이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아이를 나의 이해심과 기다림에서 밀어내면서까지 친구를 사귀고, 학교를 가게 했어야 했을까. 학교 보내는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는 보육기관, 교사는 보모가 아니다.

  학교를 보내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아이가 정해진 곳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학교에 보육의 의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돌봄 관련 교육이 학교에 당연하듯이 들어와 있고, 아이가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으면서 재능을 계발할 수 있게 하는 방과후활동을 학교의 프로그램으로 책임지고 있는 것 역시 보육의 일환 아닐까. 이로 인해 교사의 업무가 과중되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해 학교를 교육 시설이 아닌 보육 시설로 생각하는 부모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는 아이를 잘 케어만 하면 되는 곳으로 인식된다. 그래서인가. 아이가 조금만 다쳐도, 싸워도 학교 탓, 교사 탓을 하는 것이다. 제일 안전해야 하는 곳에서 아이가 다친 것이 용납되지 않나 보다.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 우리 아이의 학습적인 면과 인성적인 면의 성장을 돕는 것이 교사의 주된 역할로 인식하기보다 아이를 안전하게 돌봐주는 것에 중점을 둔다. 특히, 유치원부터 했던 요구가 초등학교까지 이어진다.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여달라거나, 가방 챙기는 것을 확인해 달라고 한다. 이런 것은 사실 괜찮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운 엄마라서 기꺼이 해주는 편이다. 학교를 친근하게 느끼고 안정감을 느껴야 학교생활이 즐겁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괜찮다. 그러나 도를 넘는 경우도 많다. 아이가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을 가는지 확인해 달라고 하거나 표현을 못해 우는 아이가 학교에서 몇 번이나 우는지 횟수를 세어달라고 한다. 아이의 물건이 보이지 않으니 사물함이나 책상 속에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도 하고 눈이 나쁘니 항상 앞에 앉혀달라고 하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짝꿍이랑 안 맞는 것 같으니 바꾸어달라는 요구도 하고 우리 아이는 소리에 예민하니 큰 소리로 말하면 무서워한다고 한다. 반찬은 집에서 잘 먹지 않으니 학교에서라도 골고루 먹여주시면 좋겠는데 어떤 반찬은 너무 힘들어하면 굳이 다 먹이지 않았으면 한다고 구체적인 부탁도 한다. 뭐, 부탁은 괜찮다. 어떤 부분에서는 세심하게 살펴보고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그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한 학급의 25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한 명 한 명 살펴보기 위해 정말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놓칠 수도 있고 교육적 신념으로 부탁을 듣지 않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그랬을 때 아이가 불편해했다고, 상처받았다고 민원을 넣고 항의를 한다면 그것은 이미 부탁을 했다기보다 권리라 생각한 것임이 분명하다.


  학교에는, 한 교실에는 너무도 다양한 아이가 있다. 부모는 내 아이만을 바라보지만 교사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모든 아이를 고루 바라봐야 한다. 한 아이가 아니라 학급의 모든 아이를 공평하게 대하려면 똑같은 말을 30번 이상, 똑같은 도움을 30번 이상 주어야 할 때가 많다. 그것을 단순히 교사가 해야 하는 수고로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그게 왜 교사의 일인지 묻고 싶다. 교사가 수업을 잘하는 것은 맞지만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면서 알뜰살뜰하게 챙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학교를 보내는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학교에 보냄으로써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지 그 목적에 대해 묻고 싶다. 예전의 나처럼 남들이 다 보내니까 당연스럽게 보내고 있는가. 언제부터인지 홈스쿨링 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계획적이지도 꼼꼼하지도 못한 나로서는 감히 엄두도 안 나는 일이지만 홈스쿨링을 선택할 때, 그 이유에 대해 수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 보내는 것에 대해서도 그만큼의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학습은 이미 여기저기에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할 수 있다. 남들이 다 보내니까, 그게 대한민국 정규 교육코스니까 라는 말 대신 학교를 보냄으로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지 목적이 있어야 한다. 나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가?

-학교교육을 통해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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