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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Nov 08. 2023

있는 그대로, 보다.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만 바라보는 것도 능력이다.

  설거지거리를 잔뜩 쌓아놓고 잠이 들었다. 바쁘고 피곤해하는 남편에게 잔소리할 여력이 없어 그냥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서 한숨 한번 쉬고 퇴근 후에 마음을 다스리고 설거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냄새나는 음식쓰레기물을 외면하며 대충 딸들 아침을 챙기고 출근했다. 퇴근하는 내내 쌓인 설거지를 할 생각에 우울했다. 집에 오니 감기를 앓고 있는 둘째는 잠들어있었다. 둘째가 먹고 싶어  김치볶음밥을 하고자 싱크대에 갔다, 호흡을 크게 하면서. 그런데 너무나도 깨끗한 싱크대에 순간 우렁각시가 누구일까 하며 설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남편은 아닐 것 같고 결국 잠들어있는 둘째의 배려라고 혼자 결론을 내리고 흥얼거리면서 밥을 준비했다. 그러면서도 요 녀석이 시험 끝나고 많이 놀고 싶어 점수 따고자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 '사실'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오랜 병을 어찌 털어야 하는가. 어느 순간부터 있는 그대로를, 보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상실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만나고 지속적인 보이는 문제행동을 고쳐줄 때 원인부터 찾는다. 태어났을 때부터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가 있던 공간에서 혹은 아이를 대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뭔지 모르게 조금 뒤엉키거나 불안정한 어떤 경험이 축적되어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자꾸 보이는 모습 뒤편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보고자 한다. 그걸 알아주면 아이 안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직업병이 분명하다. 그런 시선이 도리어 아이의 아름다움을, 세상의 예쁜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시를 배우면서 아름다운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찾아 도마 위에 놓고 시를 갈기갈기 찢듯이 해부하던 어떤 선생님처럼 나는 아이의 문제 행동을 고쳐주고 싶다는 명목으로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정말 보이는 그대로, 눈에 보이는 그대로 느껴야 해요. 그러면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죠. 온 세상이 신기한 것투성이 이고 예쁜 것 투성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중략-
마지막으로 하나, 생각의 스위치는 끄고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세요. 우린 항상 무언가를 판단하느라 에너지도 감정도 너무 많이 쓰고 있잖습니까. 그러다 보면 자꾸만 소모적인 생각이 날아들고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거나 이해하지 못하게 돼요. 생각이란 자신만의 선글라스 같은 거니까요. 그러니까 생각의 스위치부터 꺼야 하죠.
손원평작가의 <튜브>중에서


  마침 아이들과 "함께 읽기"를 하고 있는 손원평 작가의 <튜브>의 한 부분을 한 아이가 발췌했고 그것을 보고 잠시 숨을 멈추었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냥 바라보는 순간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지 잊고 있었다. 그렇다. 언제부터인지 아이의 행동을 판단하느라 많은 에너지와 감정을 쏟았다. 그러면서 아이가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놓쳤다. 예쁜 것투성이 인데 마음껏 예뻐해주지 못했다. 일 년이란 짧은 시간에 얼른 고쳐주고 싶어서 사랑의 마음을 풍부하게 표현하기보다 지적을 했다.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상실했음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참 많이 배운다. "함께 읽기"를 하면서도 내가 쓰윽하고 넘어갔던 좋은 문장들을 아이들은 잡아내어 단상을 쓴다. 그로 인해 다시 문장을 음미하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아름답다. 그리고 신기하다. 물론 나는 변함없이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또 고쳐주어야 할 것이 있을 때 열심히 그 원인과 뒷이야기를 찾으면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게 돕겠지만 조금 여유롭게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이다. 가끔 모든 생각의 스위치를 끄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어떤 판단도 없이 흠뻑 느끼리라.


  한 아이는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평가 없이 봐야겠다고 다. 그렇다. 아이에게 배워 나 역시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마음을 되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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