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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Nov 06. 2023

하향평준화

 함께 주저앉는다면 나아갈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억척스럽다고 한다. 에너지가 많다면서 열정을 학교에서 불태우냐고 한다. 사실 나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떤 일이거나 주어지면 짧은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해결해야 직성이 풀린다. 에너지를 고르게 분배하지 못하기에 집에 오면 기진맥진한다. 소파 또는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나무늘보처럼 축 늘어진다. 다른 사람이 짐작은 틀린 것이다. 단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책임감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성취감도 느끼고 또 성장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디까지 해야지 맞는 거지?' 하며 멈추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사는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의견이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관리자의 태도가 원인일 때도 있고, 열심을 비난하는 동료교사의 비아냥거림일 때도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한데 눈치 보게 된다. 그런 빈정거림별거 아닌 듯 툭툭 털어버린다. 어차피 내 인생을 그들이 살아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만 가끔은 '어디까지'에 대한 고민 한다.


  "수업하는데 딴짓해도 다른 아이를 방해하지 않으면 굳이 혼낼 필요 없잖아?" ,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지 보육하는 사람이 아니야." ,  "너무 열심히 하지 마. 누가 알아주기는 할까?" , "네가 그것을 하면 안 하는 사람이 너무 부족해 보이지 않아? 왜 그렇게 튀려 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독려할 것 같지만 사회에서는 열정을 보이는 사람을 경계한다. 비교당하니 다들 하지 말자 분위기를 조장한다. 내가 안 하니 너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차라리 솔직하기나 하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는 걱정으로 포장된 비난은 뭔가를 더하고 싶지 않지만 너 때문에 더 한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그런 사람들은 편하고 쉽게 그리고 대충 하는 쪽을 지향하고 있다. 결국 하향평준화를 향해 달려간다. '함께'라는 명목으로 자기보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사람을 끌어내려 아래로 평균을 맞추고자 한다. 좀 더 애쓰기보다 지금 그 상태보다 약간 못 미치는 수준에 안주한다. 노력하는 사람마저도 비난으로 주저앉힌다.


  올해 초, 오래간만에 만난 고학년 녀석들의 수업태도에 당황했다. 혼잣말 대잔치에, 교과서에 낙서하는 것이 기본이다. 떠들거나 심하게 장난하지 않지만 듣거나 참여하지도 않는다. 책상 서랍 속에는 책이 한가득 들어있으며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다. 의사표현이나 감정표현을 정확하게 하기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강해지는 동물의 왕국이었다. 교사 앞에서는 질서를 지키지만 교실 밖을 나서는 순간 무법지대가 된다. 아이들에게 혹시 이런저런 일로 잔소리를 들은 적이 없냐고 물었다. 교과서에 답 쓰는 것을 검사받은 적이 있는지, 낙서를 지우라는 잔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지 혼잣말보다 상대를 바라보고 정확하게 묻고 답하라 했는지 물었다.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조용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낙서를 하고 손장난을 해도 지적받은 적이 별로 없다 했다. 다른 친구를 방해하거나 수업시간에 떠들면 잔소리를 들었을 뿐 그 외 상황에서는 혼난 적이 없단다. 나처럼 꼼꼼하고 깐깐하며 잔소리를 많이 하는 선생님은 처음이라면서 조금 힘들어했다. 별 걸 다 잔소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수업을 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 전부인가. 문제없이 안전하게 그냥 일 년을 보내고 아이가 하던 대로 그냥 두어도 괜찮은 것인가. 주어진 시간에 수업을 하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하는 것으로 교사의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아도, 성장을 돕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가. 과연 교사는 어디까지 해야 그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유별난 것인지 욕심이 많은 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반 아이들을 자식처럼 생각하고 키우고자 공을 들이는 것이 책임감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오버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교사라는 직업에 많은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이가 성장할 수 있게 자잘한 잔소리를 하면서 함께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 또한 교사의 역할이 아니라면 수업준비를 철저하게 해서 반 아이들이 모두 80% 이상의 교과 내용을 이해하고 습득하게 도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난 가르칠 테니 배울 사람은 배우고 말 사람은 방해는 하지 말라고 하는 태도는 너무 안일하다. 교사의 최소한의 역할도 수행하지 못한 채 어떻게 그것까지 하냐고 투덜대는 것이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공교육의 수준을 밑으로 끌어내리고 교사에 대한 존중감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분노가 일었다. 하지 않으려면 혼자 하지 말아야 한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사람을 붙잡아 앉히지 않는 양심은 있어야 한다.  


  학교 안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편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준에 맞추어 최소한의 것을 해야 한다고 하며 열심을 비난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거기에 끌려간다면 우리 사회는 멈춘다. 고인 물이 되어 썩을 것이다. 하향평준화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대충 살게 함으로 서로에 대한 관심마저도 끌어내린다. 능력도 인성도 더 낮은 곳을 향해 내려가게 한다. 나만의 문제도, 내가 속한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더 넓게 한 사회, 한 나라를 멈추게 할지도 모른다. 정 귀찮고 힘들다면 혼자만 하지 않음 된다. 그리고  욕먹는 것을 감수한다면 되려 사회가 더 건강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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