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안부를 물어본 것이 언제쯤일까. 안부를 묻는 것은 언제 시간 되면 밥이나 한번 먹자는 것처럼 형식적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점점 안부를 묻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통신의 발달로 손가락 몇 번만 꿈지럭되면 물어볼 수 있지만 굳이 하지 않는다.
물었다가 골치 아픈 이야기를 들을까 봐, 개인적인 문제를 털어놓을까 봐 겁이 난다는 사람도 있었다. 내 삶도 골치 아픈 일 가득인데 다른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이 부담스럽다고도 한다. 중고등학생들 제자 녀석들이 그랬다. 공부하다 보니 친구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현실의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지만 더 깊이 알고 싶지 않다고. 관계가 이어지지 않아도 SNS 발달로 서로 어떻게 살더라는 대충 안다고도 말한다. 물론 그 역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지만 어쩜 그들을 보여주는 모습만 보길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 이상을 묻거나 궁금해하면 벽을 친다. 벽을 치기 전에 더 묻지 않는다.
나 역시 사람마다의 거리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좀 더 친밀하게 또 어떤 이와는 친해 보이지만 딱 거기까지인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옛날 사람인지라 어떤 모습으로든 관계를 이어간다. 공적으로 만나 사이라도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속상한 마음을 들어준다. 뭔가 해결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러면서 서로를 더 이해하고 그 힘으로 툴툴 털어낸다. 그리고 지나가듯 안부를 물어봄으로 그냥 각자의 마음 한 켠에 서로가 있음을 확인한다. 참 별거 아닌 거 같은데 어떤 사람에게는 용기를 주고 또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때로는 관계가 너무 깊이 엉킬까 봐 망설인다.
사실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묻는 것, 어떻게 사니 혹은 밥은 먹고 다니냐는 질문은 왠지 꼰대 같다는 생각에 한동안 하지 않았다. 특히 졸업한 녀석들이 궁금해도 왠지 주책맞아 보이고 심히 관여하는 느낌을 줄까 봐 안부를 마음에 묻었다. 찾아오는 제자들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잠자코 들어주되 그 이상은 묻지 못했다. 괜히 더 물으면어색해지고 불편해질 것 같았다.
안부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던 중 반 아이들과 고정순 작가의 <나는, 비둘기>라는 그림책으로 토론을 하게 되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활하는 비둘기는 눈먼 늙은 쥐에게도 먹이를 나누어주고 눈먼 늙은 쥐는 비둘기에는 어떤 동물이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날개가 다쳐서 날지 못한다고 하는 비둘기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날개로 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눈먼 늙은 쥐가 말한다. 난 사실 그 장면이 어이없었다. 이미 한쪽 다리가 잘리고 날개마저 다친 비둘기에게 언제인가 날 수 있다고 희망을 주는 눈먼 쥐에게 화도 났다. 현실을 직시하고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헛된 희망을 안겨준다고 느꼈다.
그런데 아이들은 달랐다. 눈먼 늙은 쥐 덕분에 자신이 '나는 비둘기'라는 것을 상기할 수 있었다했다. 비둘기가 다시 날기 위해 도전했던 것은 눈먼 늙은 쥐가 "어떤 동물"인지를 물었기 때문이라고 강한 확신의 어조로 말하였다. 비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의지를 갖게 한 것, 어떤 것을 할 때 온전히 자기임을 느꼈던 것은 다시 깨닫게 도와준 것이라는 설명은 현실적인 조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를 물어봐줌으로 잊고 있던 자기를 돌아보게 하고 삶에 다시 도전하게 함을 배운다.
외로운 어느 날, 잘 지내냐는 안부에 한없이 눈물을 쏟아졌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세상이 등 돌리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되고 있는 그때, 누군가의 안부인사로 끊어졌다 생각한 그 끈이 사실 얇아져서 보이지 않았던 것임을 깨닫게 한다. 아직은 살아볼 만하지 않냐고, 아직 당신 곁에 당신의 안부가 궁금하고 걱정되는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냐고 툭 던지는 희망이 된다. 나이 들면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상황에 놓이면서 잠시 잊고 있었다, 나를 지탱해 주는 많은 끈들이 있음을. 그리고 나 역시 다른 사람을 지지해 주는 하나의 끈이었음을.
오늘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에게 안부를 물어야겠다. 아주 가끔그렇게 무심코 내려놓는 마음이 어떤 사람에게는 살아갈 희망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당신을 지지하고 있는 끈, 세상과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끈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잠깐 바닥에 묻혀있거나 세상만사에 덮여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슬쩍 들추고 싶다.날개를 다쳐날지 못할지라도 자기 존재를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안부를 묻는다. 실낱 같은 희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떠오르는 작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함께 숨 쉬고 있음을 인지함으로 약간 따뜻해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