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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Nov 22. 2023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

존재 자체를 그냥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 일타강사의 한 마디가 가슴에 꽂혔다. 백억 대 이상의 연봉을 받는 강사는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부품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대체불가능한 인재가 되자고 했다. 사람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그 분야에서 이야기하지 않고는 안 되는 사람이 되자는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공부를 하는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한 분야의 원탑이 되기 위해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한다. 존재의 가치를 그렇게 증명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 적도, 가르친 적도 없어 당황스러웠다. 그 강사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그 분야에서는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자수성가의 정말 좋은 견본이 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그 강연에 숨이 막혔던 것일까. 내가 지금 초등교육에 있어서 브랜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면 언제나 대체가능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이는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을 때 그 강사의 조언을 들으라 하고 혹자는 공부하는데 자극이 필요하다면 찾아서 들으라고 하는데 나는 흔쾌하게 그러라 할 수 없다.


  타인의 평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면서도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하는 것, 성실한 것은 중요하다. 나 역시 늘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자신을 좋아하는 바탕이 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강사의 많은 강연을 들은 것이 아니라서 가타부타 말하는 것은 섣부르지만 존재를 증명해내지 않아도 뭔가를 달성하지 않아도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믿기에 자기를 잘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노력해서 달성해 내고 성취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수월하게 만들 수는 있다. 그럼에도 뭘 해내지 않는 자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 안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기에 사는 이유를 참 오랫동안 찾았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무던히 많이 노력했다. 지금의 성실은 어쩌면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내기 위한 나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거나 해내지 않으면 그 쓸모를 보여주지 않으면 먼지처럼 사라질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런 시절을 보냈기에 가끔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을 만나면 몇 번이고 속삭여준다.

  "넌 태어난 그 자체로 귀한 사람이야. 존재 그 자체로 사랑스러워."

이 말이 간절히 마음에 닿길 바라면서 말한다. 어떤 아이는 낯설어하고 어떤 아이는 의아하게 본다. 그럼에도 상기된 얼굴에 기쁨이 차오르는 것은 같다. 반면 너무 많은 부분에 애쓰는 녀석을 보면 안쓰러워서 너무 애쓰지 말라고, 너 자체로 충분하다고 한다. 자존감이 낮은 녀석들은 쉬이 변하지 않지만 사랑이 가득한 진심은 안다. 살면서 가장 힘들 때 떠올렸음 한다.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음을. 이런 나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플릭스>라는 그림책 토론을 하는데 한 녀석이 예리하게 잡아냈다.


 

 고양이마을에서 개의 외모로 태어난 주인공 플릭스는 미움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다가 우연히 강에 빠진 고양이 아저씨를 구함으로 고양이 마을의 영웅 대접을 받는다. 모든 고양이들을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표현에서 한 아이가 울퉁불퉁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선생님. 그럼 뭔가를 해야만 플릭스를 인정해 주는 거예요? 그럼 너무 나쁜 거 아닌가요? 그게 너무 슬퍼요. 플릭스가 누군가를 구하지 않았다면 결국 인정받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이."

그러자 주변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주억거렸다. 누군가에게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그 과정이 아이들은 불편했나 보다. 외모가 다르다고 따돌리던 고양이들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뭔가 다르고 부족한 사람은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다고 했다.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사람이 많음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아이는 말은 충분히 타당했다.

  결국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한정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적어도 너희에게 있어 그런 어른이 되지 않겠노라는 약속이었다.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면서 성패와 상관없이 늘 안아주겠노라, 응원하겠노라 했다. 물론 답답한 마음에 잔소리 한가득을 안겨줄 수 있겠지만 무엇을 하거나 말거나 사랑하는 마음은 어떤 과정이나 결과, 노력에 좌우되지 않겠니라면서, 존재 자체를 그냥 인정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리고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속으로 결의를 다졌다.


  세상은 사실 존재 자체로 받아주지 않을 때가 많다. 편견을 가지고 평가하고 판단한다.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없다. 나 역시 내가 대체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보다 더 훌륭한 많은 교사들이 있음을 안다. 만나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은 내가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삶에, 사람에 희망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고, 따뜻한 마음을 바탕으로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공부 역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봄으로써 자신을 알고 타인을 한번 더 돌아볼 수 있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요구한다면 나는 더욱더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증명해내지 못해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노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받아들인다. 그 자체를 품는다.  존재 자체로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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