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에이스예요."
어떤 교사는 자기 기준에 부합하는 아이를 그 반의 에이스로 소개한다. 영어단어인 "ace"는 '고수, 우수한, 최고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교사가 의미하는 에이스는 어떤 의미일까. 그 반에서 가장 우수한 아이일까. 여러 모로 우수하여 교사의 잔소리 없이 알아서 척척 잘하고 있는 아이를 말하는 것인지,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아이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나에게 에이스인 아이는 누구인가 고민한다. 우리 반에도 당연히 여러 사람들이 인정하는 모범생들이 있지만 내 잔소리를 듣지 않은 아이는 없다. 예의 바르고 얌전하며, 공부도 잘하고, 단정하고, 어른의 말을 잘 듣는 아이에게조차 잔소리를 하는 내가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잔소리 대신 그들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자 슬쩍슬쩍 건드린다. 끝없는 말장난으로 발끈하게 만들기도 하고 나의 장난을 만류하고 참는 그들이 끝끝내 휘말려 들게 해 놓고 씩 웃는다. 아이는 흐트러지면서 혹은 나사 하나 풀린 상태가 되면서 당황해한다. 여태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 툭 튀어나오면서 어색해한다. 그러면 은근하게 말한다.
"선생님은 모범생 별로 안 좋아해. 그냥 네 모습 그대로 솔직하고 편하게 살아."
"선생님이 인정해주지 않아서 서운하니? 난 있는 그대로의 널 인정해, 네가 노력해서 보여주는 부분 말고. 그니까 너무 애쓰지 마."
'모범'이라는 범주에 드는 아이들은 정제되고 절제된 생활을 한다. 발랄하고 허당끼 있는 모습을 감추는 대신 어른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 집중 잘하는 바른 태도를 장착한다. 모범생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을 겁내기도 한다. 어떤 교사에게는 그런 아이들이 손 갈 곳 없이 편하고 에이스로 여겨지겠지만 그들의 매력은 '모범생'이라는 타이틀 아래 감추어진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분류되고 또 그에 맞게 행동한다. 마치 하나의 잘 만들어진 가면을 쓰는 것처럼. 허당끼를 감추고 똥꼬 발랄하고 똘끼 있는 모습을 꼭꼭 숨긴다.
그런 그들이 처음 잔소리를 듣거나 지적을 들으면 교사가 자기를 미워한다고 오해한다. 잔소리에 속상해하며 눈물을 그렁이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대놓고 선생님만 자기의 모범적인 생활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따지기도 한다.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는데 선생님만 이상한 부분에서 지적한다고도 한다.
그냥 둘 수도 있다. 그게 편할 수 있다. 굳이 그 가면을 벗길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틀에 갇혀있는 그들이 좀 더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알아가길 원한다. 모범생이라는 작은 틀에 접힌 날개를 펼치길 바라기에 자꾸 자극한다. 아이가 존재 자체로 인정받음으로 그 날개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본인의 모습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오히려 좋다고 알려주고 싶다.
잔소리가 필요하지 않은 아이들은 없다.
매번 칭찬을 듣던 아이가 학교에서, 담임에게 잔소리를 듣는다면 부모는 속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잔소리를 한다는 것은 아이에 대한 애정이다. 완벽한 인간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길 바라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한 트집을 잡아 아이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명 에이스라 알려진 아이에게도 잔소리를 하는 교사라면 아이의 건드려지지 않았던 부분에 자극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본인이 가진 매력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