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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Oct 02. 2024

당신의 최선

'최고 중의 최고'가 최선이다.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이 볼이 부풀어 오른다. 입술을 내밀고 빨간 펜으로 줄을 그으면서 대충 한 숙제에 대한 지적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변명을 시작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게 n 이 아니라 h잖아요. 제 눈에는 그런데.."

  "저 진짜 노력한 거예요."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해할만하다. 넘어가줄 만하다. 그러나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는 것은 기본 하나가 흔들리면 그다음도 흔들리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치 도미노가 와르르르 순서대로 넘어가는 것처럼 한번 봐주면 그다음도 대충과 적당히로 얼버무리기 쉽기에 녹아내리는 마음을 다시 세운다. 그리고 툭 던진다.

  "선생님도 읽을 줄 안다. 네 글씨는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읽을 거야."

  "노력했다고? 그럼 그게 너의 최선인 거야?"

  많은 잔소리보다 효과적인 질문에 아이는 꼬리를 내린다. 보이지 않는 귀가 축 처지는 것이 느껴진다.


  6학년 2학기 시작을 기점으로 아이들은 이미 중학생이 된 듯 다 큰 듯 어설픈 반항의 몸짓과 날카로운 눈빛을 장착하고 등교한다. 사춘기의 터널에 진입하는 시기이라서 관계에 예민해지고, 잔소리에 언제든 엇나갈 준비를 한다. 말이 길어지면 안 된다, 눈을 마주치고 있어도 다 흘려보내니. 무작정 화를 내서도 안된다, 어디로든 튕겨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래서 끊이지 않는 변명을 하거나 말없이 레이저를 쏘듯 나를 바라볼 때 조용히 묻는다. 그게 너의 최선이냐고. 그럼 그 정도를 너의 한계로 인정하고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 않겠다고. 멈칫하는 아이들의 눈빛에 망설임으로 일렁인다. 스스로의 한계를 거기까지로 정하고 싶지 않음이 느껴진다. 그래서 조용히 "아니에요." 하면서 돌아선다. 울퉁불퉁하게 굴어도 자신의 한계를, 최선이 낮은 선에 평가되는 것은 싫은가 보다. 물론 이 질문이 변명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데 성공적인 것은 다 튕기지 않고 들어주는 아이 덕분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고맙다. 그리고 혼자 마음으로 한 번쯤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보길 응원한다. 


  사실 요즘 아이들과 함께 읽고 있는 책 <이토록 공부가 재미있는 순간>에서 나온 내용과 잔소리가 일맥상통하여 최선이냐는 질문이 효과적이기도 하다.   책의 저자는 "최선"이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 함부로 쓰지 마라. '최선'이라는 말은 나 자신의 노력이 나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 -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저자

'최선(最+善)이 무서운 말이었더라고요. '선()' 한 글자만으로도 '최고'라는 뜻인데, 여기에 '최()' 한 글자를 더 붙여서 '최고 중의 최고'라는 뜻이 된 거니까요. 최고의 노력들만 모아놓은 것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최고를 골라 다시 한번 뽑아놓은 '최고 중의 최고'. 이게 '최선'의 진짜 뜻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시 이 글귀를 읽어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이들도 잘 알고 있다. 물론 그 질문 끝에는 너희가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 쌓이는 능력과 결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었다. 한 번에 "짠"하고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최선의 노력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그게 실력이 되고 능력이 되는 것이다. 살다 보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다 보면 설겅설겅하는 것과는 결과가 다를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겪었으면 좋겠다.


  어쩜 '최선'은 나에게도 무서운 단어이면서도 쉽게 좌절하지 않게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최선의 노력이 항상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매사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것은 후회하지 않기 위함이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성숙해지고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모든 것에 최선일 수 없지만 한 번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최선의 노력으로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음을 경험했음 한다. 시작도 전에 못한다고 스스로의 날개를 꺾지 않기를 바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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