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표지가 국어교과서에 나왔다.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지만 혹시 모르는 아이가 있을까 싶어 줄거리를 말해 주었다. 이야기 속 소년은 나무 위에 올라타거나 그네를 타면서 나무와 친해진다. 매일 나무와 놀던 소년이 성장하면서 나무를 점점 소홀하게 생각하고 마침내 떠난다. 그러나 돈이 필요하자 돌아오게 되고, 이런 소년에게 나무는 사과를, 가지를 내어주고 마침내 기둥까지 내어준다. 그렇게 내어주면서 나무는 아낌없이 줄 수 있음에 행복해한다. 노인이 된 소년은 지쳐서 돌아오고 나무는 그루터기에 앉아서 쉬라고 한다.
아낌없이 내어주면서 행복해하는 나무의 모습이 늘 내심 불편했다. 소년의 이기심에도 나무가 행복해했다는 결말에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의아했기에 유명한 그림책임에도 사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읽어주지도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나무의 헌신적인 사랑을 아이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졌다. 아낌없이 주면 행복하다고 할까. 자신에게 있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누구라고 생각할까.
"여러분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누구인가요?"
많은 아이가 부모를 자신에게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물론 다 주지는 않는 것 같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들도 보였다.
"우리 부모님은 아낌없이 다 주지 않아요. 나름 당신의 노후를 생각해서 챙기시던걸요. 경제적인 것부터, 먹는 것과 물건 등 본인을 위해 늘 챙기시던걸요."
"우리 부모님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으면 좋겠어요. 저희 부모님은 잔가지까지만 주시지 줄기를 주지는 않으시는 것 같아요."
솔직한 아이들의 말에 웃음이 났다. 어리게만 봤는데 제법 상황파악을 잘하고 있으며 평소 부모의 표현을 진지하게 수용하고 있음에 감탄했다. 시대의 변화로 인한 부모상의 변했음이 느껴졌다. 희생하고 헌신하기보다는 자기의 삶을 살면서 아이를 키우고 그 노후를 의지하지 않는 부모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서 투덜거리는 아이들에게 다시 물었다.
"경제적인 것은 물론 부모님이 모든 시간과 관심을 여러분에게 쏟는 것은 괜찮나요? 여러분만의 행복만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것은 괜찮나요?"
순간 숙연해졌다. 다른 것을 떠나 부모의 관심이 오롯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경제적인 것은 온전히 다 주셔도 괜찮지만 너무 많은 관심은 사절이란다. 그게 얼마나 이기적인 마음인가를 한참 이야기했다. 원하는 것만 쏙 빼서 받고 나머지는 잔소리라 귀찮니 뭐니 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했다. 사춘기에 진입한 녀석들이라 감정 기복은 있지만 역시 아직 순딩 순딩하고 착해서 나의 잔소리를 그냥 넘기지 못하고 진지한 자세로 생각에 잠겼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였다.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과연 아이를 바르게 성장하는 데 있어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책의 주인공 소년처럼 필요할 때만 찾아오고 언제든지 원하는 것을 내어주면서도 나무는 행복할 수 있는가. 소년도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아니 소년은 나무를 사랑하기는 하는가.
끝없는 이어지는 질문을 정리하면서 난 아낌없는 나무의 사랑은 아이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 자신은 아무것도 주지 않게 만드는 것은 일방적인 사랑이다. 이런 사랑은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감사함 없이 요구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어야지만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사랑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주는 사람의 사랑을 귀하게 받으려면 자신도 그만큼 내어주는 경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받기만 해 본 사람은 그 사랑의 값어치를 알지 못한다. 더 나아가 주는 사랑이 자신을 더 많이 채울 수 있음을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사랑은 아름답다. 다 내어주는 사랑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냐만은 우리 아이들은 주고받는 사랑을 했으면 한다. 그래서 그 사랑을 더욱 크고 빛나게 만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