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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Oct 23. 2024

내미는 손, 잡는 손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세상을 꿈꾼다.  

  "국어 책 어디 있어?"

  수업 시작 전, 책 없이 멀뚱멀뚱 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혼내는 것도 아니었고 얼른 교과서를 준비하라는 의미였고 없으면 빌려달라고 말하라는 신호였다. 답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속이 터졌다. 다시 물었다.

  "사물함에서 안 꺼내왔어?"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급한 성질을 누르고 기다렸다. 그리고 답을 기다린다는 표시로 눈을 마주쳤다. 그랬더니 아이는 슬그머니 고개를 떨군다. 갑자기 참아오던 시간들이 끓어올라 넘치기 시작했다. 계속 쳐다보아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답을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옆의 아이가 자기 교과서를 밀어주면서 같이 보자는 제스처를 취하길래 심술궂게 한마디 툭 던졌다.

   "친구에게 책을 함께 보자는 것은 좋은데 쟤가 빌려달란 것도 아니잖아. 빌려달라고 하거나 같이 보자고 하면 그때 같이 볼 수 있을까? 안 그럼 저 친구는 계속 저렇게 누군가 알아서 도와줄 때까지 가만히 있을 거야."


  그렇다. 요즘 아이들은 무엇인가 부족하거나 필요해도 굳이 스스로 다가와서 요청하거나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어쩌면 부족함을 인식하고 앉아있으면 집에서 누군가 알아서 도와주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어느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해본 적도 없어 할 수 없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것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받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라는 안전교육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상황마다 아이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보통은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서 도와주었을 경우이거나 도움을 구하기도 전에 받은 경험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손을 내밀지 못하는가.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늘 끙끙대며 스스로 해결하는 나에게 누군가 쓰윽 한마디를 적이 있다. 도움을 청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때 아차했다. 내가 내세웠던 것은 자존심이 아닌 가난과 부족한 능력을 숨기고픈 방어막이었음을. 그러나 엄한 자존심에 도움받는 것을 싫어했던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아이들이다. 이유를 알고 싶었다. 도와줄 친구나 어른이 있음에도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평소 누군가에게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고 손을 든 아이는 겨우 4~5명밖에 되지 않아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물으니 어른에 대한 신뢰라 했다. (역시 지나친 안전교육의 폐해다.) 어떤 아이들은 혼나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용기, 혼자 할 수 있는 일인지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정해야 하는 빠른 판단력이 필요하다 했다. 또 잘못을 했어도 겁먹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이들 말을 듣고 보니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손을 내밀고, 내미는 그 손을 잡아주는 경험을 쌓아 두려움 없이 서로 도우면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한참 설명했다. 아직 어리기에 진짜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길 수 있고, 그럴 때는 솔직하게 털어놓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길을 걷다 위험한 일을 마주했을 때 등등 아직 혼자 해결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고 구체적이며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요청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는 착한 어른들이 많기에 너희가 손을 내밀면 기꺼이 손을 잡아줄 어른이 많다고 강조했다. 역시 그렇게 믿고 있고 믿고 싶다. 진짜 극한 상황이 왔을 도움을 청할 사람 일 순위가 부모이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주변 좋은 선생님 또는 어른을 찾아 손을 내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좋은 어른을 알아볼 있는 안목을 길러 도움이 필요할 언제든 손을 내밀기를, 도움을 거절당해도 실망하지 않고 도움을 청할 있는 용기를 갖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그 힘으로 또 누군가를 도와주길.  


  무엇보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기보다 서로 연대함으로 단단하고 따뜻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잘 받고 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내미는 손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인생을 조금 따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른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고 또 그다음 사람이 그렇게 하다 보면 신뢰할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 마음도 있다. 얼마 전에 갔던 조해진 작가의 <빛과 멜로디> 북토크 플랜 카드가 쓰여있던 한 문장이 떠오른다.


보답을 바라지 않는 작은 호의를 타고
시간과 공감을  넘어
기적처럼 울려 퍼지는 삶의 멜로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이렇게 작은 호의가 넘쳐나고 또 기적처럼 울려 퍼지는 멜로디가 있는 삶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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